[후추칼럼]히딩크가 뭐 어쨌는데??!!

  • 입력 2001년 8월 28일 10시 00분


참 오랫동안 참았다. 체코에게 0-5으로 깨진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이 스포츠 신문에선 일제히 히딩크를 공격했다. 심지어 '스포츠 지성인'이라고 믿어왔던 후추 독자들까지도 게시판에 '히딩크 어쩌고... 히딩크 저쩌고...' 결국엔 우리나라 3대 공중파 방송국 중 하나인 MBC에서 또 한번 축구를 주제로 한 '100분 토론'을 때렸다. 아!!! MBC와 스포츠와 100분 토론... 이 3각 관계의 묘미(?)는 그 구렁이 넘어가는 듯한 얄팍한 뻔뻔함에서 비롯된다.

입이 없어서 가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혀가 꼬여서 가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히딩크 흔들기'의 수위가 어느 정도까지 가는지 정말 한참을 참으며 지켜봤다. 보다보다... 속에서 불덩어리가 치밀어서 간만에 키보드를 두드린다.

자... 히딩크가 도대체 뭘 잘못 했는데?? 휴가 갔다 온 게 뭐가 잘못 되었는데? 흑인 여자친구 데리고 들어온 게 뭐가 어때서? 유럽 팀한테 0-5으로 개박난 게 이번이 처음이란 소린가? '히딩크 시절에 2번, 차범근 시절에 1번... 고로 차범근이 더 우수한 감독??? 아저씨들... 제발 좀.... Please~~~ 트루시에는 허벌나게 뛰어 다니는데 히딩크는 절룩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었나? 그것도 영 틀린 소리는 아닌갑소. 말 그대로 일본 축구는 날고 있는데 우리 축구는 기어가고 있으니... 다만, 그 문제의 핵심은 '프랑스 대 네덜란드'도 아니고 '히딩크 대 트루시에'도 아니고, '요코하마 대 상암'도 아닌... 축구라는 스포츠 구석구석에 포진하고 있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슈의 문제점이요 뒤 떨어짐이란 소리다. 아, 잠깐.... 우리나라 선수 개개인의 역량과 자질 만큼은 아직까지도 일본과 맞짱 떠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 만큼은 인정!

MBC 얘기 좀 합시다. 선수협 때도 그랬고,시드니 올림픽 이후에도 그랬고 이번 히딩크 때도 그랬다. 필자가 이 '100분 토론'이란 프로그램, 특히 스포츠란 주제를 놓고 웃기지도 않는 '쇼 프로'로 몰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을 수 없는 구토가 느껴진다. 더 가관은 MBC의 간판 아나운서 손 모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미디어 비평'이란 프로그램의 존재 사실이다.

'미디어 비평'? MBC가 도대체 이런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송할 자격이 있는 방송국이란 소린가?? 오히려 '미디어 반성'이 훨씬 더 적합하다. 히딩크 체제가 뭐가 잘못 되었는데... '한국 축구 히딩크호, 이대로 좋은가?' 대체 왜 이런 주제의 토론 프로그램을 기획조차 하느냐 말이다. 이게 바로 '악질 여론 조성', '감독 뒤흔들기', '냄비팬 양산'... 등의 '한국 축구 문화 최악의, (다시 한번 강조) 최악의 질병'이 치유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란 말인가?

국내 프로야구 중계나 프로 축구 중계 방송 개뿔 관심도 없으면서... 시청률 좀 올릴 수 있겠다 싶으면 잽싸게 "야! 100분 토론에 한번 걸어!" 당장 다음달 나이지리아 대표팀 초청해서 2-0으로 이기고 또 그 다음달 누구, 그 다음달 누구... 선전에 선전을 거듭한다면... 그땐 MBC에서 또 이런 제목의 '100분 토론'이 급조될 것인가?

'히딩크 신드롬 -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제발 좀... Please...

필자의 얄팍한 소신은 그렇다. 누군가에게 지휘봉을 맡겼으면 끝까지 한번 믿고 밀어줘야 한다고... '건전한 토론을 통한 발전적인 대안 마련...'? 야~~ 참 그럴싸 하다. 차범근이 이걸 잘 못해서 짤렸다고 한다. 그러니 히딩크도 특히 한국 축구 풍토에서 살아나려면 이런 비판도 달게 받고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필자는 부탁이 하나 있다. 허모씨라는 히딩크 전담 언론관... 그 분이 제발 이런 한국 특유의 풍토에 대해선 단어 하나하나 전부 직역해서 히딩크에게 알려주지 말았으면 한다. 그 세세한 내용까지 다 알았다간 모름지기 히딩크 조만간 가방 싸서 네덜란드로 돌아갈 것이다... "놀고 있네... 그래서 니들 그 잘난 축구 풍토 때문에 월드컵에서 아직까지도 1승도 못 하고 있냐?'하는 반응과 함께 말이다.

우리는 한가지 fact를 종종 잊고 있다. 방송의 색 안경에 가려 그리고 언론의 부채질에 Up 되어서 말이다. 히딩크는 월드컵을 2년도 채 안 남겨둔 시점 '한국 축구의 마지막 선택이자 희망'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곳이 없었던... 완전히 바닥을 친 상태의 한국 축구의 마지막 대안이었다는 점이다. '검증된 지도자'를 영입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것 저것 다 해 봐도 안 되니... 비록 파란 눈의 이방인에게 태극 마크를 맡기더라도 월드컵에서 더도 덜도 말고 딱 1승만 해 줄 수 있는지 한번 믿어보자...' 이 심정이 없었더라면 히딩크는 롯데 호텔에 여장을 풀 이유가 없었다.

월드컵? 물론 얼마 남지 않았다. 히딩크 축구? 아직 씨앗도 뿌려보지 못 했다. 왜 이리도 성급한 것인가? 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지를 떠나서... 우리나라 축구 팬들 조급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쩜 이리도 좀 더 넉넉한 마음과 열린 눈으로 지켜보고 격려해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차범근의 지도력을 그토록 비난하고 폄하하던 축구 팬들이 히딩크까지도 의심한다면... 우리는 축구라는 종목을 깨끗이 접어야 한다. 아니면 우리끼리 그냥 K-League만 죽어라고 하면서 '아시아 최강' 어쩌고 하면서 자위나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히딩크를 끝까지 믿고 지지할 것이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무조건 적으로 한번 믿어볼 것이다. 왜? 우리 축구 팬들이 대표팀 축구를 위해서 시도해 보지 않은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건 국대 감독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지 않고 일방적으로 믿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그거라도 한번 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감독도 교체해 보았고 유니폼도 바꿔 보았고 선수 명단도 바꿔 보았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우리가 해 보지 않은 건 감독을 끝까지 믿어 보는 것이다. 그토록 믿어도 안 된다면 그땐 정말 펑펑 눈물을 쏟으며 땅을 치고 가슴을 토 해내는 일이 있더라도 이번엔 끝까지 한번 믿어 보고 싶다. 김정남, 이회택, 김호, 차범근, 허정무... 또 누구? 다 해보지 않았나? 결과적으론 다 안되지 않았나? 히딩크 말고 그럼 누구?? 베켄바워? 벵거? 자께? 제발 좀... Please...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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