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뉴스]찬호와 미국 그리고 차별

  • 입력 2001년 8월 23일 10시 07분


아주 오래 전 UCLA 남자 농구 팀은 무적이었다.

전설적인 감독 잔 우든이 이끌었던 UCLA에는 카림 압둘 자바라는 대형 센터가 있었다. 압둘 자바는 UCLA에서 뿐만 아니라 NBA에서도 초대형 센터로서 맹활약 하며 수백 종류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압둘 자바가 가장 존경 했던 감독은 바로 우든이었는데 존경했던 만큼 섭섭한 감정도 많았다. 바로 단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우든 감독은 평소에 신사적이고 선수들을 아들처럼 대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우든 감독도 인간인지라 너무 화가났을 때 압둘 자바를 향해 "nigger(검둥이)"라는 표현을 썼다. '인격자' 우든 감독의 입에서 평생에 두 번 이상 나오기 힘든 단어였을 것이다.

정말 존경 했던 감독의 입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말인 'Nigger'가 발음 됐을 때 압둘 자바의 마음속에는 한 순간, 섭섭함과 동시에 치욕감이 밀려 들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흑인 차별에 대해 흑인들은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다.

무대는 2001년 다저스 스테이디엄으로 바뀐다.

다저스의 감독과 투수 코치 그리고 박찬호의 전담 포수 채드 크루터는 '코리언 특급'을 일제히 맹비난 했다. 박찬호가 8월들어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또 2경기에서 부진을 보인 것에 대한 반응이었는데 올시즌 22차례나 퀄러티 스타트를 기록한 선수에게는 가혹할 정도였다.

만약 케빈 브라운이 이런 상황에 있었다면 가능했던 일일까. 설사, 감독과 투수 코치, 그리고 크루터가 '다른 뜻(?)'이 없었다고 했을지라도 박찬호는 압둘 자바가 받았던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아, 또 이렇게 차별을 받는구나"

박찬호의 발차기 사건 때, 그가 했던 말을 우리는 잘 기억 하고 있다. 아시안으로서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나도 이런 경험이 많아 억울하고 답답할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수퍼 마킷으로 무대를 바꿔보자.

이것 저것 물건을 카트에 담아 계산대 앞으로 갔던 나는 앞줄에 있던 3-4명의 백인 손님과 점원이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인사를 주고 받고 농담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0분이 지난 후 내가 계산할 차례가 됐는데 나는 점원에게 "Hi"라고 인사를 했지만 그는 인사를 받지 않고 무시한 채 열심히 계산만 하고 있었다. 인종 차별이었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너, 왜 나한테 인사 하지 않냐?"고 항의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점원은 "Bye"라는 일상적인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이는 인종차별을 1단계에서 10단계로 나눈다면 1단계에 해당하는 아주 사소한 일이다. 점점 단계가 높아갈수록 아시안계 이민자들의 차별은 극심해 진다.

얼마 전 테네시주에서 손선녀라는 한인 이민자가 살해 됐지만 경찰은 자살로 판단하고 수사를 종결한 바 있다. 물론 그가 자살을 할 가능성도 배제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경찰은 손선녀씨의 미국인 남편을 제대로 조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이 나기 얼마전 손 선녀씨는 911 (한국으로 말하면 119)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남편이 폭행을 하려고 한다고 구조를 요청했었고 또 남편의 마약 판매 사실을 경찰에 신고 했었다. 이런 내용은 911 구조대 긴급 전화 음성 메시지로 남겨져 있었다.

삼척 동자가 봐도 손선녀씨 남편이 용의자인데 경찰은 사건 다음날 남편에게 집 열쇠를 넘겨 줬고 남편은 이후 손선녀씨가 사체로 발견된 수영장 주변을 청소하고 잔디까지 깔아 버렸다.

백인 이웃들 마저 손씨의 남편을 의심하면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했는데도 지역 경찰은 꿈쩍하지 않았다고 한다.

"차별이란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사회적인 혜택이나 사회활동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차별은 주로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관에서 비롯 된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실제적인 사례나 구체적인 행위로 판단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일반화시킨 것을 근거로 한 판단이 편견이나 선입견이다." (http://www.sarangbang.or.kr에서 발췌)

미국은 인종 차별이란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뿌리깊고 심각하며, 강한 폭발력을 지닌 뇌관과도 같은 풀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인종 문제에 대한 이해 없이는 미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렵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인종차별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내 자식, 형제, 친척"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고 인종차별을 받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인종차별하는 상대방을 오히려 불쌍하게 여기면서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갖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박찬호는 아시안이기에 앞으로 메이저리그 정상에 우뚝 선다고 해도 백인 만큼의 대접을 분명 받지 못할 것이다. 과거 흑인 행크 아런이 푸대접을 받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가 역사에 남는 야구 선수가 되려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종차별하는 이들을 이길 수 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팬들의 격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박병기 ICC편집장

저 작 권 자: ICC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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