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헌 얘기 실체는 뭔가

  • 입력 2001년 8월 9일 18시 41분


여권내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개헌관련 문건이 나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여권은 문건의 형식이나 내용으로 볼 때 개인의 습작이거나 여권을 흠집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번 문건은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시 평화협정체결 등 가시적 성과에 따라 개헌을 하고 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이 통합한다는 정계개편안을 담고 있다. 개헌과 3당통합을 정권재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한달 전만 해도 민주당 소속 의원 70여명이 참여한 새시대전략연구소라는 곳에서 공공연히 ‘통일헌법공론화’주장이 제기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작년 10월 “남북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할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은 여권이 김 위원장의 답방을 계기로 통일헌법을 만들기 위한 개헌을 하고 그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도모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의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김 위원장의 답방을 이른바 정권재창출의 수단으로 이용하겠다는 발상은 정말 치졸한 단견이다. 더욱이 그의 답방을 파당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든다면 지금까지 정부가 추구해 온 대북(對北)정책의 명분과 원칙도 다 허물어지고 만다.

정권재창출을 위한 개헌의 동기를 김 위원장의 답방으로 잡겠다는 발상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다. 개헌은 그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되고 다수 국민이 원하는 상황에서, 그것도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개헌이 우리 헌정사에 어떤 오점을 남겼는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통일헌법을 만들어야 하겠지만 지금은 분명히 그럴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김 위원장의 답방을 그처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할 경우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남한의 정치사정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북측에서는 김 위원장의 답방을 최대한 활용해 그 대가를 올리려 하고 그의 답방을 기다리는 남측에서는 상대적으로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의 언론사 세무조사도 김 위원장의 답방에 앞서 비판적인 언론을 길들이는 정지작업의 하나라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여권의 어느 누구라도 그런 개헌발상을 갖고 있다면 하루빨리 털어버려야 한다. 이 시점에서 통일헌법 개헌이 이뤄지리라고 믿는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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