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의 명품이야기]이브 생 로랑

  • 입력 2001년 8월 8일 18시 28분


검은 뒷 배경, 광택 있는 실크 위에 새하얀 피부의 누드 모델. 붉은 머리 연두색 아이섀도, 도취된 핑크색 입술,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팔찌 금빛 하이힐, 그리고 너무나 에로틱한 자태. 이브 생 로랑의 향수 ‘오피움’의 광고사진이다. 미국에서는 광고가 금지되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 광고는 향수 오피움의 특징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편을 의미하는 ‘오피움’이라는 이름으로도 문제가 됐던 이 향수는 동양풍의 분위기를 풍겨 미국 디자이너의 가볍고 현대적인 향과는 다르다.

30년 이상 파리 모드계에서 활약해온 이브 생 로랑은 ‘시인의 외모’와 ‘자유로운 영감’을 지닌 디자이너다. 36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18세에 국제양모사무국이 주최한 디자인콘테스트에서 드레스 부문 1등을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크리스찬 디올의 조수로 채용돼 패션계에 입문한다. 57년 크리스찬 디올이 갑작스레 세상을 뜨자 이브 생 로랑은 그의 뒤를 이어 크리스찬 디올사의 디자인을 맡게 된다.

60년 디올사에서 파면 당하는 불운을 맞았으나 연극 영화 발레 부문의 의상디자인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62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조그만 브랜드를 연다. 초기 제품은 인정을 받았으나 경영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숙명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몬드리안룩 매니시룩 점프슈트 소녀룩 등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데 이는 ‘고품격의 우아한’ 기존 관념 대신 대중화시대에 어울리는 매력을 도입한 것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이라는 이름으로 패션왕국을 형성해 나간다. 66년 110개 여성용 부티크에 프레타 포르테 라인이 선을 보였고 69년에는 남성용 부티크들이 개설됐다. 그후 모피 장신구 스카프 안경 구두 화장품 등 여러 분야에서 라이센스 사업이 이뤄졌다.

폭넓은 라이센스는 그에게 부를 안겨줬지만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90년대 초반 파리 패션계의 약세로 이브 생 로랑도 위기를 겪게 되고 93년 제약회사인 엘프 사노피와 합병하게 된다.

로랑은 천재적 디자인으로 레종 느와르 훈장 등 수많은 상과 찬사, 명예를 안았던 디자이너였다. 여성적이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로 알려진 로랑은 65세의 나이에도 소년의 열정을 지닌, 패션계 최후의 낭만파 귀족주의자다.

장현숙(보석 디자이너)Client@jewelbutt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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