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측 의도, 제대로 알고 있나

  • 입력 2001년 8월 6일 18시 35분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공동선언’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강조한 것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작년 남북 정상회담 이래 ‘북측이 주한미군 계속 주둔을 용인했다’는 정부측 말을 들어온 우리 국민들로서는 이번 북-러 공동선언으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언문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으로부터의 미군 철수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서 미룰 수 없는 초미의 문제가 된다는 입장을 설명’했고 ‘러시아측은 이 입장에 이해를 표명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러시아측이 주한미군 철수를 이해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북측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청와대측도 “북한은 속내와 외부적으로 하는 말이 다르다”며 이번 북-러간 합의 내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작년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구두로’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협의한 것과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서면으로’ 입장을 확인한 것은 형식으로만 봐도 큰 차이가 있다. 당연히 정부는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사실 작년 6월 이후로도 북측이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북측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대미(對美) 압박용’이거나 ‘내부결속용’일 뿐이라고 설명해왔다. 나아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3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작년 6월 북한에 가서 북한이 지난 반세기 동안 주장해오던 주한미군 철수 등 세 가지를 양보받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정부가 남북관계와 주한미군 간의 미묘한 문제를 너무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 이후 북측이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적이 몇 차례 있었지만, 거기엔 항상 전제조건이 붙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즉 북측의 입장은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거나 주한미군이 중립적인 존재로 지위가 변경될 때에 비로소 계속 주둔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한미(韓美) 동맹체제의 와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대북정책에서 정부는 북측의 진의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