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夏 爐 冬 扇(하로동선)

  • 입력 2001년 7월 29일 18시 36분


韓非子의 說難篇(세난편)은 說客(세객)이 君主를 遊說(유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지식이나 靑山流水 같은 言辯(언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정확한 意圖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주가 명예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때 財物을 논하면 ‘俗物根性’(속물근성)이라고 욕하며 반대로 財物에 뜻이 있는데 명예를 논했다가는 ‘物情에 어둡다’고 욕한다는 것이다. 또 意圖를 꿰뚫고 말하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보통이 아닌’ 놈으로 여겨 꺼리며 다른 것을 論하면 앞뒤도 재지 못하는 無能한 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遊說의 核心이 상대방의 意圖를 正確하게 파악한 다음 그가 원하는 것을 論하는 데에 있다고 설파한다. 매우 쉬운 것 같지만 韓非子 자신이 遊說에 실패하여 결국 死藥을 받고 죽어야 했던 점을 본다면 遊說가 정말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또 있다. 그가 죽고 약 300년 뒤 東漢시대에 王充(27∼97)이 나타났다. 政治人이자 大學者였던 그는 晩年에 官職을 파하고 鄕里에 들어앉아 著述에만 전념했는데 그 중의 하나에 유명한 論衡(논형·사물의 輕重을 논평함)이 있다.

무려 30년에 걸친 力作으로 당시의 世態를 批判함으로써 務實精神을 강조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 중 逢遇篇(봉우편)에 보면 出世가 꼭 才能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며 時期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强調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아무 쓸모도 없는, 그래서 비현실적인 才能이나 學說을 가지고, 그것도 여름의 煖爐나 겨울철의 부채 같은 式의 進言만 하고 君主가 원치도 않는 일을 하거나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고서도 오히려 화를 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幸運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夏爐冬扇이다. 여름철의 난로나 한겨울의 부채는 맑은 날의 우산이나 비오는 날의 짚신처럼 아무 쓸모가 없다. 무릇 모든 물건은 그 쓰이는 時期가 따로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가 嚴冬雪寒에도 아이스크림을 먹듯 겨울철의 부채라고 해서 전혀 쓰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부채에 대해 설명했거니와(2000년 8월4일자 合竹扇) 우리나라에서는 숯불을 피우거나 무당의 푸닥거리, 남사당패의 줄타기에는 사철 구별 없이 부채가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夏爐冬扇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 아닌가.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