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환자'에 사기혐의 수사 의뢰

  • 입력 2001년 7월 3일 18시 39분


노수환 판사
노수환 판사
인천의 한 판사가 교통사고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꾀병환자’ 퇴치에 나섰다.

인천지법 노수환(盧壽煥)판사는 3일 의사가 발부한 상해진단서만 있으면 피해 사실을 대체로 인정해 오던 종전의 교통 사고처리 관행에 대해 “상해진단서가 발부됐더라도 사고의 크기와 충격의 정도, 피해자의 신체변화, 피해자의 당시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한편 ‘꾀병 환자’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실태 및 판결〓박모씨(40·여)는 오르막길에서 자동변속기가 장착된 승용차를 일시 정차했다가 출발하던 중 차량이 뒤로 미끄러지면서 뒤에 정차중인 택시와 충돌했다.

택시운전사 김모씨(35)는 박씨가 언쟁을 벌이다 그대로 달아났다며 전치 2주의 상해진단서를 첨부해 ‘뺑소니’로 신고했다.

노 판사는 “현장에서 직접 차를 몰고 충돌실험을 벌인 결과 사람이 다칠 정도의 충격은 없었고 의사의 상해진단서가 몸이 아프다는 김씨의 말만 믿고 발급된 점 등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김씨가 상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노 판사는 합의금(300만원)을 받자마자 병원에서 퇴원한 김씨를 조사한 결과 김씨가 1년 동안 3차례나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수령한 전력이 있어 검찰에 사기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김모씨(26)는 승용차 뒷문 부분으로 피해자 이모씨(26)가 운전하는 승용차의 뒤쪽 범퍼를 스치는 접촉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했다.

이씨는 병원에 한달 동안 입원하면서 전치 2주의 상해진단서를 첨부해 보험금 600만원을 타냈다.

노 판사는 범퍼 페인트칠이 약간 벗겨진 정도에 불과하고 뒤늦게 아프다고 주장한 점 등 정황에 비추어 차량을 파손한 사실만 인정, 가해자 김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고 ‘뺑소니’ 부분은 무죄를 선고했다. 노 판사는 대신 피해자 이씨를 검찰에 사기혐의로 수사의뢰했다.

노 판사는 최근 한달간 벌인 ‘현장 실험’을 토대로 이날 ‘꾀병환자’ 때문에 가해자로 몰려 형사재판을 받은 9명 중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나머지 5명은 뺑소니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차량파손 사실만 인정, 벌금형을 선고했다.

▽판결 의미〓사소한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무조건 아프다고 주장해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가해자로부터 합의금 등을 받아내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 이번 판결의 의미.

단순 접촉사고라도 가해자가 음주나 무면허, 뺑소니 등의 약점이 있을 경우 피해자가 다친 것으로 위장, 합의금을 받아내 온 행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노 판사는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들이 상해 정도가 약한데도 합의금과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몇 달씩 입원하고 의사들은 진단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일단 진단서부터 떼주는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인천〓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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