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신작소설 '난 유리로 만든…' 펴낸 전경린씨

  • 입력 2001년 6월 11일 18시 37분


소설가 전경린(40)씨가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생각의나무).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던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이후 2년만에 낸 신작이다.

그룹 ‘동물원’의 노래 ‘유리로 만든 배’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감각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육체적 도발’을 감행하는 여주인공 은령은 ‘결혼 적령기’인 스물 다섯살이다. 이 나이에 결혼을 했다는 전씨는 이 때를 “처음으로 심각하게 희망을 잃는 나이”로 정의한다.

“이 시기의 여자들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결혼하여 안정적인 체제에 편입하는 여자와, 그것을 거부하고 모진 여행을 떠나는 여자죠.”

오랫동안 양부 밑에서 눈칫밥을 먹던 은령은 지방 방송국의 구성작가 일을 핑계 삼아 결혼을 단념하고 집을 떠난다. ‘뿌리 없는 생의 권태’에 빠진 그녀는 두 남자를 만난다. 사생아로 태어난 시인 유경, 그리고 재력가이면서 성을 탐닉하는 이진.

은령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정신적인 안락과 육체적인 쾌락을 함께 경험한다. 점점 ‘자의식 없이 욕망으로만 가득한 몸’의 본능에 빠져들 즈음, 두 사람이 은령의 집에서 마주치는 파국이 벌어진다. 그 충격으로 유경은 자살하고 이진은 냉담하게 돌아선다. 얼마뒤 은령은 교통사고로 양부와 친모를 잃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거칠게 요약한 이같은 스토리 구성은 이 소설이 애정소설의 전형을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랑의 두 측면인 서정(抒情)과 욕정(欲情)을 대별하는 두 남자의 캐릭터 역시 멜로드라마에서 본 듯 낯익다.

전씨의 초창기 작품집 ‘염소를 모는 여자’(1997년)에서 보여준 귀기(鬼氣) 어린 섬뜩한 상상력은 거의 증발됐다. 대신 사회학적 정신분석학적 서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 세계는 가슴이 없는 남자와 페니스가 없는 여자로 이루어져 있지. 우리의 결핍감은 운명적인 것이야”라는 이진의 말처럼 프로이트 개설서나 바타이유의 저작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말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이 작품을 논쟁적으로 만드는 ‘뇌관’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을 반(反) 페미니즘, 혹은 탈(脫) 페미니즘적 시선이다.

‘억압 당하는 딸에 대한 진정한 자각이 없는 양부(養父)사회’를 겨냥한 여주인공의 ‘불온한’ 애정행각은 시작이 ‘도덕적 도발’이었지만 그 종점은 ‘도덕적 퇴행’으로 비쳐질 소지가 다분히 있다.

‘파경’이후 두 애인과 부모가 모두 곁을 떠난다는 설정은 가부장제를 거역한 주인공에 대한 ‘응징’으로 읽힌다는 점, 두 남자가 떠나고 5년후 평온을 되찾은 주인공이 이 모든 사건을 젊은 시절 한때의 ‘혼란’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 구체적인 증거다.

하지만 전씨는 이런 지적에 대해 도리어 적극적인 의미 부여를 아끼지 않았다.

“한 때의 방황이나 일탈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땅의 여성에게도 인생이란 본인 의지와 노력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죠.”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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