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 대북정책]北-美관계 사실상 '원점'으로

  • 입력 2001년 5월 27일 18시 48분


미국의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는 27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끝난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에서 ‘검증 없이는 북-미 관계에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대북정책의 원칙을 거듭 분명히 했다. 정부가 우려했던 대로였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26일의 한미 양자회의에서 미측 대표들은 2시간50분 동안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결과를 설명하면서 수없이 ‘검증’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런 태도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이끌어 내자는 ‘페리 프로세스’를 미국이 사실상 폐기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3월 한미 정상회담 기간에 제시한 ‘포괄적 상호주의’도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과정에서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뜻이란 지적도 나왔다.

다른 관계자는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버릇없이 굴면 대화를 계속하면서 달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를 무시해 버리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북-미 대화의 전개방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전망이다. 부시 행정부는 자신들의 관심도에 따라 대북협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검증 여부에 따라 북측과 단계적으로 대화를 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 때 핵 미사일 테러 등 각종 현안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놓고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을 뚫어서라도 대북 포용정책의 모멘텀을 유지하던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측은 또 북한이 국제 금융기구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벗어야 할 ‘테러 지원국’이라는 멍에도 “공은 북한에 있다”며 쉽게 벗겨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이 문제는 대북협상의 대상도 아니라는 뜻까지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임성준(任晟準) 외교부 차관보는 회의가 끝난 뒤 “북한이 제네바 합의 의무 등을 성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북-미 대화가 제대로 되려면 북한이 먼저 핵 확산과 미사일의 개발, 시험발사, 수출 등을 안하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도 대북 설득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뜻과 다름없다.

부시 행정부가 그나마 다음달 중으로 조건 없이 북-미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최소한의 배려이자 정부의 부단한 대미 설득 노력의 성과로 보인다.

<호놀룰루(하와이)=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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