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고이 접어 나빌레라'공연 김리혜-김덕수부부

  • 입력 2001년 5월 15일 19시 22분


남편은 장구를 연주하고 아내는 하늘하늘 승무를 춘다.

장구 하나로 세계를 사로잡은 김덕수(48)와 한국무용가 김리혜(48)가 27일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춤판 ‘고이 접어 나빌레라’를 연다. 이 공연은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우리 춤과 타고난 ‘장구잽이’인 한 남자에 푹 빠져 20여년을 살아온 김리혜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무대다.

일본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던 김리혜는 우리 춤사위에 끌려 81년 이매방 선생 문하에 입문했다. 94년 해외동포 출신으로는 최초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춤’의 이수자로 선정됐고 98년에는 무형문화재 27호 ‘승무’의 이수자가 됐다.

김덕수와 김리혜는 공연에 앞서 팜플렛 포스터 등에 사용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12일 서울 동숭동 ‘난장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 자리에선 조역인 김덕수가 첫 개인 춤판의 주인공 김리혜보다 더 바쁘고 더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배경으로 어울린다면서 직접 병풍을 들고 오는가 하면 아내의 승무 의상을 시시콜콜 챙겼다. 두사람이 함께 무대에 선 것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아내만을 위한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리혜는 이번 공연에서 ‘승무’ ‘살풀이 춤’ 외에도 경기무속가락에 맞춰 ‘태평무’를 춘다. 김덕수가 음악감독을 맡아 무대에서 장구를 맡았고 명창 안숙선이 특별출연한다. 특히 한영숙류의 태평무는 약 20분의 길이로 재구성해 무대에 올린다.

“우리 춤을 배운지 꼭 20년만에 첫 춤판을 갖게 됐습니다. 춤이란 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개 속의 무엇 같아서. 어설픈 가운데 발표회를 열면 선생님들에게 허물이 될 것 같았습니다.”

옆자리에서 “오늘 주인공은 김리혜씨”라며 말을 아끼던 김덕수는 “원래 이매방 선생같은 대가 옆에서 춤을 직접 보고 배우면 자신의 춤은 정말 보잘 것 없게 여겨지기 마련”이라고 덧붙인다.

82년 두사람은 ‘한국의 집’에서 제1호 전통 혼례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김덕수는 “장구 껴안고 살면 된다”는 독신주의자였지만 79년 일본 신주쿠에서 열린 가야금연구회 모임에서 한 여성을 발견한 뒤 결혼을 결심했다. 프리랜서 기자인 김리혜였다.

불같은 성격의 김덕수는 한국 춤을 배우기 위해 모국을 찾은 김리혜를 매일 연세대어학당에 데려다주고 이매방 선생에게 소개하는 등 휘모리 장단처럼 밀어부쳐 결혼에 골인했다.

“내 뿌리가 한국에 있다지만 두 사람은 가치관과 살아온 삶에서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마치 한국과 일본의 동거 같았습니다. 또 남사당패에서 자란 잡초같은 아이와 일본 도쿄에서 큰 내성적인 아이의 만남이었고. 그러나 극과 극이어서 오히려 서로 강하게 끌렸고 어려움을 이겨냈는지 모릅니다.”(김리혜)

처음 가깝고도 멀게 시작됐던 두 사람의 결합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용훈(19) 동훈(15), 두 아들과 이번 무대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공연은 오후 7시. 1만∼3만원. 02-3673-2502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김덕수-김리혜 부부의 말말말◇

▽“춤을 왜 배우러 왔습니까. 기생할 것도 아닌데….”(김리혜)〓80년대 초반 전통 춤을 배우러 한국에 왔다고 하자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반드시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하고, 여성은 아내이자 어머니여야 한다는 원칙은 포기 못해요.”(김덕수)〓5세 때부터 세상을 유랑해 가정과 여성의 역할을 중시한다며.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못하는 게 없습니다.”(김리혜)〓처음엔 우리 말도 못했지만 공연으로 자주 집 비우는 남편 때문에 집 계약에서부터 못 하는 게 없다고.

▽“0.01초 차이로 집이 무너지는 게 보이고 들려요.”(김덕수)〓최근 끝난 첫 솔로 콘서트 소감을 묻자 장구를 40여년간 두드렸더니 이젠 알 것 같다며.

▽“저, 외조많이 했습니다. 나보다 김리혜씨가 더 바뻐요.”(김덕수)〓불가피했던 몇 번을 빼면 아내가 춤을 추면 꼭 연주를 해주었다며. 김리혜씨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신라향악에 대한 고찰’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 일본의 잡지에 프리랜서 기고가로 활동하며 번역 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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