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원각사터 발굴 서울시-불교계 갈등

  • 입력 2001년 5월 10일 19시 01분


‘서울 도심에 있는 원각사터를 계속 발굴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울시가 종로2가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의 하나로 3월16일부터 지난달 23일까지 추진했던 옛 원각사터 발굴작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고민에 빠졌다.

탑골공원 내 원각사터 발굴결과를 둘러싸고 서울시와 불교계간 갈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발굴을 주도한 서울시는 “탑골공원 내 발굴만으로는 옛 원각사터의 완전한 원형을 찾기 어렵다”며 다음주 안으로 발굴작업을 끝낼 방침이다. 이에 대해 불교계에서는 서울시가 8월15일로 예정된 탑골공원 성역화작업을 서두르는 바람에 불교사적으로 의의가 큰 원각사터의 발굴작업이 용두사미(龍頭蛇尾)에 그치고 있다고 반발한다.

국보 2호인 원각사지13층탑이 서 있는 이 곳은 원래 고려시대 사찰인 흥복사터로 조선 세조가 왕실사찰로 4대문 안에 지어 유명해졌다. 당시 사방 둘레가 1.4㎞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조선 중기 연산군과 중종 때의 억불정책으로 폐허가 됐다. 그후 1897년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에 따라 국내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조성돼 지금까지 내려온 것.

서울시립박물관 발굴팀이 투입된 이번 발굴작업에 새롭게 발견된 유물들은 옛 사찰의 기둥을 떠받들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초석 2점과 산스크리트 문양 수막새, 청기와 조각 2점 등. 특히 사찰 창건 때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우물(지름 130㎝, 깊이 345㎝)이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시립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발굴에 참여한 문화재 지도위원 대부분이 현재까지 나온 유물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앞으로 탑골공원 안에서 발굴을 계속해도 원각사터의 유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잠정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굴대상이 된 지역은 옛 원각사의 요사채 등 부속시설이 있던 자리. 따라서 원각사의 원형을 제대로 찾으려면 탑골공원 바깥에 있는 낙원상가와 인사동 부근을 발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다만 앞으로 있을지 모를 전면 발굴에 대비해 발굴팀은 새로 발견된 우물을 보존하는 한편 담 주변에 조경용으로 심을 나무도 뿌리가 얕은 수종을 택했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원각사터의 전모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서울시가 탑골공원 재개장일에 맞춰 서둘러 발굴작업을 중단하는 것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은 10일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 “탑골공원 성역화는 원각사에 대한 역사적 규명작업이 마무리된 후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각사 주지인 보리 스님도 “성역화 사업을 다소 늦추더라도 가람 배치 등 원형을 밝힐 수 있는 전면적인 발굴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해영 서울시 공원녹지과장은 “전면 발굴 여부는 문화재청의 결정을 지켜봐야 하지만 서울시로서는 당초 예정대로 공원 재개장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연욱·박윤철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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