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서울대 등지는 서울대생 는다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39분


서울대의 학사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서울대를 떠나는 학생들이 늘고 있으며 인기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자퇴하거나 인기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전공 재수’를 하는 학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돈벌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기초학문의 고사(枯死)현상과 학과 서열화 등 ‘학문 편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를 버리는 서울대생〓최근 서울대에서 미국 하버드대에 들어가려는 학생 2명이 하버드대 면접관으로 위촉받은 서울대 교수를 만나 면접을 했다. 각각 의대와 사회대에 재학중인 두 학생은 “서울대의 초라한 교육환경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서울대 자연대에 학교장 추천으로 입학한 손모군(20)은 이번 학기에 미등록제적됐다. 고교 1, 2학년 때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 동메달과 금메달을 잇따라 목에 걸었던 손군은 지난해 8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장학금을 받고 미련 없이 서울대를 떠났다. 역시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던 허모군(20)도 지난해 8월 서울대 자연대에 휴학계를 내고 MIT로 진학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울대 대신 외국의 명문대로 직접 진학하려는 학생들도 늘어나 ‘우등생’ 사이에 서울대 기피 현상이 번지고 있다.

▽인기 전공을 위한 자퇴와 전과〓9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던 홍모군(22)은 지난해 법대로 전과했다. 홍군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려면 법대로 전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아예 자퇴하고 법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하려는 재학생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24일 서울대 학적과에 따르면 자퇴생의 수는 99년 129명에서 지난해 204명, 올해 4월 현재 219명으로 늘어났다. 이들 자퇴생 가운데 비인기학과 학생의 90% 가량은 같은 대학 내 또는 다른 대학의 인기학과로 이동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울대가 단과대별로 자퇴생과 재입학생을 교차 분석한 결과 인문대 농생대 사범대의 자퇴생들은 대부분 법대 경영대 경제학과 등에 재입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생대의 경우 지난해 신입생 가운데 44명(전체의 약 10%)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재도전, 올해 인기학과에 입학한 뒤 자퇴원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 때문에 재수하는 서울대생〓2학년을 마치고 인기학과로 전과하는 학생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97년 4명, 98년 11명에 불과했던 전과생은 99년 44명으로, 지난해에는 75명, 올해 4월 현재 119명으로 급증했다. 인문대의 전과생 30명 가운데 대다수가 경영대(14명)와 법대(10명)로 몰렸다. 농생대의 전과생 17명 가운데 절반이 공대로 전과했다.

학부제 실시와 함께 ‘인기 전공’을 선택하려고 동기생보다 1년 늦게 전공을 선택하는 ‘전공 재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 자연대에서 올해 지망한 전공에서 탈락한 학생은 학년 정원(380명)의 10%인 38명. 이들 가운데 18명은 2차로 전공을 지망해 3학년이 됐지만 나머지 20명은 ‘재수’를 시작했다. 서울대 공대는 교수 10명으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정도다.

서울대 관계자는 “내년부터 모집단위가 광역화돼 인기 전공 편중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면서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가 열악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학문 편중 현상이 심해지면 학문의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서울대의 연구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이 같은 이탈 현상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달·박용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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