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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4월 18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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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상큼한 향, 데이트 때는 섹시한 오리엔탈 향 등 분위기에 맞게 자유자재로 향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기에는 1백여 종의 원료향이 실같은 모세관으로 연결돼 있어 원하는 처방대로 섞는 게 가능하다.
“앞으로 수년 안에 이런 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혈당센서 인슐린분사기 등 각종 장치를 하나의 칩 위에 설치하는 초미세 화학공정(process―on―chip) 기술 덕분이지요.”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공학과 우성일 교수의 설명이다. 초미세 화학공정이란 실리콘칩 제조 공정, 미세 가공 공정 기술을 이용해 물질을 이동시키고 혼합하고 분리하는 과정을 머리카락 굵기(100㎛) 정도인 마이크로미터(1㎛〓100만 분의 1m)단위에서 구현하는 기술이다.
최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 열기가 뜨겁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응용범위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인슐린공급기나 향수조합기 같은 휴대용품 뿐 아니라 화합물을 합성하는 마이크로반응기, 다양한 조성의 물질을 한꺼번에 만들어 특성을 일괄 분석·평가하는 고속 연구개발 기법 등이 실현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기판 위에 미니 플랜트가 나란히 꽂혀 있는 PC 크기의 공장도 등장할 전망이다.
세계 제1의 화학회사인 듀폰사는 최근 반응성이 크고 유독한 중간원료들을 마이크로반응기에서 합성해 쓰고 있다.
이런 물질들은 저장과 운반이 어렵기 때문에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 쓰겠다는 것이다. 이 반응기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히터, 촉매반응기 등 각종 장치가 미세한 파이프로 서로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장치는 만에 하나 사고가 나더라도 규모가 워낙 작아 피해가 미미하다.
또 마이크로 수준에서는 큰 규모에서는 어려운 화학반응이 쉽게 일어난다. 크기가 작아지면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넓어져 반응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우성일 교수팀은 메탄올을 이용한 연료전지를 개발하는데 초미세 화학공정을 이용하고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전지의 효율을 가장 좋게 할 수 있는 전극 재료를 빨리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 교수는 “칩 위에 서로 조성이 다른 200여가지 재료를 한꺼번에 만들어 성능을 측정할 수 있다”며 “예전에는 1년 걸릴 일을 이제는 며칠만에 해치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이득도 만만치 않다. 기존의 실험장치에 비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름 5㎝의 플라스크 대신 100분의 1 크기인 500㎛ 마이크로반응기를 쓸 경우 쓰이는 시료의 양을 100만 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이 분야의 개척자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화공과 클라브스 젠센 교수는 ‘화학공학 과학’ 최근호에서 “초미세 화학공정이 화합물을 생산하는 초미니 공장으로 발전하려면 센서와 제어기 등 각종 장치를 한 칩에 모을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공동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석기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