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지킬 건 지켜야지"

  • 입력 2001년 4월 16일 19시 00분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3호선 약수역. 전동차 안은 군데군데 빈자리가 눈에 띌 정도로 한산했다.

한 무리의 중년 남녀가 ‘노약자에게 자리양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차에 올랐다.

“우리는 ○○○연맹에서 나온 봉사단원입니다. 노약자석은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자리입니다. 젊은이들은 모두 일어나 주세요.”

노약자석의 젊은이들이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일어서는데 한 여대생이 못들은 척 신문을 보며 버텼다.

봉사단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리가 남아도 노약자석은 비워 둬야 합니다. 어서들 일어나 주세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중년 봉사단원들은 그 학생 앞으로 몰려가 같은 말을 되뇌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았다. 마침내 폭발하기 직전 초로의 신사가 끼어들었다.

“아 지금은 그냥 앉아있게 해. 노인이 타면 그때 양보하지 뭐.”

‘그것 보세요’하는 표정으로 여대생이 봉사단원을 흘겨보며 다시 자리를 잡는데 맞은 편에서 한 초등학생이 모 음료회사 광고를 흉내내듯 손잡이에 매달린 채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지.”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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