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강남-수도권 '영재과외' 열풍

  • 입력 2001년 4월 15일 18시 41분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A학원에서 열린 ‘영재학교 대비반’ 설명회. 대형강의실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학부모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영재학교의 설립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우리 아이가 실력이 이 정도인데 지원할 자격이 됩니까?” “구체적인 시험준비 요령을 알려 주세요.”

학원 측은 “당장 올해 중학생 영재반이 과학고에 만들어졌고 앞으로 특수목적고가 영재학교로 전환되거나 새로운 형태의 영재학교가 생길 것”이라면서 “5월 중순 영재학교 대비반을 개설해 전문적으로 교육하겠다”고 홍보했다.

서울과학고와 한성과학고 등 서울의 2개 과학고에서 중학생 영재반이 14일 첫 수업을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서울 강남지역과 수도권 학원가에 ‘영재과외 열풍’이 불고 있다.

▽설명회 초만원〓B영재교육센터는 최근 분당 평촌 산본 등 수도권 신도시에 잇달아 문을 열었다. 영재교육에 관한 학부모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학원 관계자는 “초등생과 중학생을 위한 영재교육 설명회를 4차례 열었는데 예상외로 많은 학부모가 참석해 깜짝 놀랐다”며 “영재가 아닌데도 대학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에 등록을 하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학부모인 한모씨(39·서울 강남구 도곡동)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공부에 소질이 있어 과학고 영재반이나 나중에 생길 영재학교에 보낼 계획”이라며 “집 근처 영재학원에는 초등학생반이 개설되지 않아 ‘예약신청’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우수학생 유혹〓서울 강남지역 학원가에서는 과학고 중학생 영재반 선발과정에 출제됐던 필기시험과 실험문제 등을 입수해 교재로 쓰거나 우수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과학고 영재반에 합격한 최모군(15)은 “한 학원에서 전화를 걸어 ‘선발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C영재학원 관계자는 “미국 고교 입학시험용 영어교재와 토플 토익참고서를 영재학교 준비반의 교재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일부 학원은 강남 중학생을 대상으로 전교 5% 이내의 성적 우수생들을 확보하기 위해 학부모 모임 등을 통해 학생들과 개별 접촉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영재교육 학원들은 주말 또는 주 3일간 교육을 시키고 30만∼60만원의 학원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J학원은 성적이 전교 1% 이내인 경우 학원비 34만원 중 20만원, 2% 이내면 15만원을 할인해주는 ‘특별대우’까지 해주고 있다.

▽무늬만 영재교육?〓영재과외가 학년을 앞당겨 배우는 선행학습을 부추기거나 기존의 각종 경시대회 대비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김모씨(41·서울 동대문구 제기동)는 “수학경시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아들을 영재학교에 보내고 싶어 학원 상담을 했다”며 “대부분의 학원들이 ‘영재교육’을 내세우고 있지만 교재나 프로그램이 경시대회 준비반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한성과학고 영재반 필기시험에 합격한 92명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4명이 “영재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고 대답했으나 “영재학원에서 배운 내용이 시험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자는 2명에 불과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석희 영재교육연구실장은 “영재는 후천적으로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일부 학원들이 영재교육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까다로운 문제를 ‘연습’시킬 경우 오히려 학생들의 창의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