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전문가에게 듣는다]이채원 동원증권주식선물운용팀장 "저평가주 장기보유하라"

  • 입력 2001년 4월 12일 17시 25분


이채원 동원증권 주식선물운용팀장(36)은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통한다. 그는 1988년 증권업계에 입문한후 줄곧 한가지 투자원칙을 고수해 왔다.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해서 적정가치에 도달할 때까지 장기보유하는 것.

이같은 운용패턴으로 이 팀장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대부분의 국내 펀드매니저들이 뚜렷한 운용철학을 갖고 있지 않는 국내현실에서 적어도 '가치투자=이채원'이란 성과를 얻었다. 또한 이같은 운용철학에 근거해서 고객들과 회사에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안겨줬다.

반면 지난 1999년 하반기처럼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광풍'에 밀려 그의 '가치투자'는 호된 시련을 맞기도 했다. '수익원도 없는 새롬기술의 시가총액이 5조원이 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며 결코 투자하지 않겠다던 그의 철학은 고객들의 거센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시장분위기가 진정되면서 이팀장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시장참가자들이 당시 새롬기술 등에 투자한 펀드매니저는 '뚜렷한 투자원칙도 없이 분위기를 따라간 대중추수주의자이지 고객돈을 전문적으로 위탁관리하는 프로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가치투자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해서 적정주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여기서 내재가치란 기업의 수익성과 자산가치 그리고 배당성향(배당금÷순이익)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개념이다. 배당성향도 높고 자산가치도 크고 순이익도 양호한 기업은 내재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증권시장은 이성적인 것 같은데 종종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이들 조건을 모두 구비하고도 주가가 낮은 기업들이 의외로 많다.

가치투자란 이들 기업을 발굴해서 제대로 평가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을 고르는 안목도 있어야 하고 시장이 이들 종목을 제대로 평가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력은 더욱 중요하다."

==국내기업들이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UBS워버그증권에 따르면 올해 한국증시의 예상 EV/EDITDA는 4.7배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국가의 7.7배보다 낮다. 영업이익과 비교한 한국기업들의 기업가치가 다른 신흥국가들에 비해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분단이란 정치적 위험과 지배구조의 비민주성 그리고 회계의 불투명성 등 경제적 위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역으로 이들 요인들만 해소된다면 경기나 수급과 무관하게 추가상승할 수 있다."

==그러면 국내주가를 만성적인 저평가 상태로 만든 악재들이 조기에 해소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 IMF이후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대단히 많이 개선됐다. 더 이상 대주주가 회사돈을 횡령한다거나 부실계열사를 지원하기 어렵게 됐다. 구태가 되풀이되면 시장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의 주가움직임에서 이같은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기업들이 배당을 부쩍 늘리는 것도 주주중심 경영이 안착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배당을 많이 주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차별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S-오일이다. 지난해보다 순이익과 매출액의 감소로 주가가 하락해야 하지만 오히려 고배당성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한후 3만원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같은 악재들이 해소되면서 그동안 저평가상태의 기업들이 적정주가를 찾아갈 것으로 본다. 적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거래소시장에서 이들 종목들을 발견하기가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하반기 국내증시의 반등을 가져올 최대 재료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개인적으로 M&A가 국내증시의 한단계 도약시킬 것같다. 대성산업 대주주간 지분경쟁에서 확인됐듯이 자유롭게 기업을 M&A할 수 있다면 경기회복과 무관하게 주가가 상승추세로 반전할 수 있다. 정부도 조만간 M&A 보완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 제대로 되더라도 국내증시가 한단계 발전할 수 있다."

==선호하는 투자종목은.

"인간의 의식주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업체들을 좋아한다. 경기사이클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기업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중에서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한다.

가령 농심과 롯데칠성 등을 좋아한다.

물론 이들 기업은 기술주에 비해 화려하지 않아 시장의 관심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합리적인 시장에서는 제대로 평가받는다고 믿는다. 기술주는 가급적 투자대상을 한정한다. 수십번 기업을 탐방하고 충분히 이해한 연후에야 투자한다. 해당기업을 탐방했는데도 이해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소형주 위주로 투자하기 때문에 대형 펀드를 운용하는데 적합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주식은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자하기 위해 매수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소형주들을 매수한후 1주일도 채 안돼 되팔려면 당연히 유동성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성장결실을 공유하겠다는 느끗한 마음만 있으면 유동성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소형주의 유동성 부족을 근심하는 전문가들에게 피터린치의 "유동성이 적어 소형주를 매수하지 않는 것은 이혼을 전제로 결혼하는 것과 같다"라는 격언을 들려주고 싶다."

==언제까지 가치주에 투자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4/4분기부터는 코스닥시장에서 승부를 걸려고 한다. 저평가된 가치주들이 올 3/4분기쯤 가면 상당히 내재가치에 근접할 것이라고 본다. 코스닥투자에 대비해서 팀원들과 열심히 기업을 탐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5개안팎의 종목을 발굴해서 투자할 것이다."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종목에 투자하기 때문에 경기회복이나 미국증시동향 등은 별로 중시하지 않는 것같다.

"사실 그렇다. 경기가 언제 바닥권에서 벗어날지 그리고 미국증시가 언제 바닥권에서 벗어날지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에 근거해서 투자하는 것은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과거 10년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거시지표를 정확히 맞춘 기관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맞지도 않는 자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면 내 자신의 운용원칙을 망각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몰라도 적어도 기관의 펀드매니저라라면 외부 환경변화에 일비일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박영암 <동아닷컴 기자> pya84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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