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서태지 "울트라맨 또 쉬러 갑니다"

  • 입력 2001년 4월 5일 19시 07분


서태지의 별명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다.

그는 대화중에 ‘아마도…’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가슴속에는 어떤 느낌이 있는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번 인터뷰가 지난해 9월에 이어 7개월만이지만 이번 역시 ‘아마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에 비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자신감에 차 있다는 점이었다. 서태지는 이런 기자의 느낌에 대해 “오랜 잠적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은데다, 나에 대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 서태지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

4일 오후 만난 그는 잠을 설친듯 하얀 얼굴이 그다지 말끔한 인상을 주진 않았다. 인터뷰 직전까지 그는 전국 순회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음반을 마무리하느라 밤샘 작업을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서태지는 이달 중순 미국으로 떠난다. 정확한 날짜는 자신도 모른다. 본지와 인터뷰를 한 것도 “출국을 앞두고 팬들에게 인사하기 위해서”라고.

향후 계획은 빠르면 6, 7월경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하고 공연도 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울트라맨이야’ 등을 영어나 한국어 또는 일본어로 부르는 것을 검토 중이다. 서태지는 “내 노래는 한국어가 가장 적합하지만 일본측의 일본어 노래 요구도 강하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서태지는 인터뷰에서 답답할만큼 말을 아꼈다. 하긴 매일 함께 지내는 매니저들조차 그의 속내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니까….

그는 지난해 8월말 귀국 이후 국내 활동의 성과로 하드코어(록+랩) 장르의 대중화와 전국 라이브 순회공연, 인디밴드 활동의 창구 마련 등을 꼽았다.

먼저 직선적이고 강렬한 하드코어가 115만여장의 판매를 기록한 것은 서태지가 했기에 가능했다는 게 가요계의 공통된 평가.

서태지와 함께 지방 순회 공연을 가진 ‘디아블로’ 등 인디 밴드들은 서태지를 ‘수호 천사’로 여긴다. 서태지와 함께 공연하면서 자신들이 전국의 가요 팬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 서태지는 “한국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밴드들을 선정해 출연시켰다”고 평가했다.

서태지는 또 “확고한 나의 마니아들이 나에게 다음 음반도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준 게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한 조사기관에 의뢰해 서태지 음반을 산 500명에게 물어봤더니 ‘다음 음반을 사겠다’는 응답이 80%로 나타났다고 그는 전했다.

이번 활동에서 아쉬웠던 것은 ‘음악적’ 토론이 드물었다는 점을 꼽았다. 뮤지션으로 새로운 사운드에 대해 밤새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 그는 “차라리 표절시비라도 제기되어 활발한 음악 논쟁이 일어났으면 했다”고 웃었다. ‘안티 서태지 연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간단히 답했다.

그의 하드코어 음반은 사실상 ‘기형’이다. 하드코어는 여러 명의 연주자가 호흡을 맞추는 밴드 음악인데도 그는 ‘원맨 밴드’로 녹음했기 때문이다. ‘원맨 밴드’란 한사람이 여러 악기의 사운드를 합성해 음반을 제작했다는 뜻이다.

라이브 공연때의 ‘서태지 밴드’는 한시적인 밴드. 서태지는 “혼자라도 좋은 밴드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면 그뿐”이라며 “연주자들을 고를 때는 기량은 물론 하드코어적인 눈빛이나 표정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정작 그의 해맑은 얼굴은 ‘하드코어류’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런가, 그렇지만 하드코어의 강렬한 메지시와 랩은 내 음악 철학의 근간”이라는 답이 이어졌다.

‘태지 마니아’들도 서태지의 직선적 메시지에 환호했다. 마니아들은 서태지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다룬 TV 프로의 광고주에게 “광고를 내지 말라”고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광고가 끊어지기도 했다.

서태지는 “팬들의 행동이 멋있었다”며 “그것은 적절한 수위에서 이뤄졌고 그것을 계기로 나와 팬들이 좀더 깊이있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사전 녹화를 고집해 방송사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른 가수같으면 엄두도 못낼 일. 그는 “콘서트의 완성도를 위해 불가피했고 처음이어서 그런 일이 있지 다음부터는 서로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한 지 10년. 그가 등장할 때마다 온 세상이 ‘태지’를 외쳤다. 그의 본명인 정현철과 서태지는 어떤 관계일까. 집에서는 그를 “현철아!”로 부른다.

서태지는 “나는 정현철이고 무대위에서는 서태지다. 서태지는 정현철이 만든 무대인이다. 나도 서태지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출국은 은둔이 아니다. 음반 작업을 겸한 휴식이다. 서태지는 앞으로 숨지 않고 사서함이나 인터넷으로 팬들과 수시로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태지의 말말말

"사랑을 하면 짐이 될 것 같다"

결혼 이야기를 꺼냈더니 나온 답이다. 독신주의자는 아니고 음악 작업 때문에 이성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고.

"태지 마니아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서태지가 안보인다고 해서 팬들은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 그만큼 서로 믿는다는 말이라고.

"즐거웠냐. 기다려라. 곧온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했더니 이렇게 썼다. 반말도 괜찮겠냐며.

"늘 시간이 모자랐다."

음반이나 콘서트 준비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활동의 A부터 Z 까지 모든 것을 관장하는 그에게 시간은 늘 부족했다.

"먼길을 돌아온 게 아니라 먼길을 당기려고 애썼다."

하드코어는 그가 어릴적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 그러나 댄스그룹으로 데뷔하는 등 길을 돌아온 것에 대해 그는 "내 음악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야 했다"고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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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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