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대통령 독대(獨對)

  • 입력 2001년 4월 1일 18시 37분


얼마나 좋은지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는게 장관 자리다. 지난 3·26 개각때도 일부 여권국회의원들이 평소 문책(問責) 대상으로 몰아세우기 일쑤였던 장관직을 놓고 암투를 벌였다는 얘기이고 보면 장관직이 좋은 자리임에 틀림없는 모양이다. 그럼 장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헌법상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지만 이는 원론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장관의 힘은 대통령의 신임과 직접 관련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독대(獨對)라는 형식을 빌어 특정 관료나 정치인에 대한 각별한 신임을 나타내곤 했다. 국가정보원이 힘이 센 기관으로 꼽히는 것도 국정원장이 매주 한차례 청와대에 들어가 독대 보고 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5,6공 시절에는 경제인들도 대통령 독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당시 경호실장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대통령과 재벌총수의 독대를 주선하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른바 통치자금이 오갔고 재벌총수들은 이를 기업활동의 안전판으로 삼았다.

▷원래 독대는 벼슬아치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독대를 금지했다. 조선시대 임금이 왕비나 후궁 이외의 사람을 만날 때는 반드시 승지와 사관이 입직(入直)하도록 돼 있었다. 조선조 500년 동안 효종과 송시열(宋時烈)의 기해년(1659년) 독대 등이 몇차례 예외적인 경우로 전해올 뿐이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의 저자 이덕일씨는 독대는 기록이 남지 않는 비정상적인 정치라고 보아 이를 금지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3·26 개각으로 입각한 신임 장관들이 2일부터 4일까지 차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20분씩 독대할 것이라고 한다. 김대통령이 신임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처음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장관들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을 파악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장관들이 대통령만 쳐다보는 눈치 병이 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무엇보다 먼저 국민을 생각하는 소신행정이 아쉬운 때다.

<송대근 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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