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경수/‘기본합의서’만 지켜도 평화 온다

입력 2001-03-18 19:09수정 2009-09-21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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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해 남북한이 ‘평화선언’을 발표하기 위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미국 방문 때 미국외교협회 오찬 간담회에서 이를 간접적으로 부인하고 특히 평화협정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한국전쟁 참전국 4자회담에서 논의될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약법에 관한 빈협약 제2조 1항은 국가간에 문서로 된 합의이면 그 명칭에 관계없이 조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평화협정은 물론이고 평화선언이나 6·25전쟁 종전 후 체결된 정전협정도 모두 국제법 주체간에 체결된 조약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통상의 국가간 관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도 이런 견지에서 조약의 일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들어 정부의 적극적인 대북 포용정책의 결과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한반도에서의 냉전구조 해체노력과 아울러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이란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나 그 말의 실체가 무엇을 의미하며 기존의 남북기본합의서와는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심도 깊은 논의가 부족한 것 같다.

우선 평화협정이란 교전 당사국간에 전쟁의 종료를 선포하는 조약이다. 6·25전쟁의 경우에는 주교전 당사국인 남북한 미국 중국 등 4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국제법상의 ‘당사자 적격(locus standi)’을 갖는다. 따라서 미―북간에만 평화협정을 맺자는 종전의 북한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명칭이 ‘평화협정’이 됐든, ‘평화선언’이 됐든 거기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가 중요한데 유감스럽게도 평화협정이나 평화선언에 들어갈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겨 있다. 예컨대 1970년대에 체결된 베트남평화협정(1973), 중일평화협정(1978), 중동평화협정(1979)을 살펴보면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호혜 평등 등 평화공존의 원칙과 유엔헌장에 따른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교전 당사국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포함한 쌍방의 관계개선 등이 거의 필수적으로 언급돼 있다. 이들 내용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 및 그 부속 합의서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시에 새롭게 평화선언을 한다고 해도 기존의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을 크게 뛰어 넘는 획기적인 것을 담기는 사실상 어려우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문제는 남북한간에 그런 선언이든, 합의든, 협정이든 유사한 약속을 되풀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잘 이뤄져 있는 기존의 합의를 단계적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다.

일례로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는 기본합의서(제17조) 상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1000만 이산가족의 한이 풀릴 것이며 그것은 동시에 이 지구상에 유일한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던 한반도에 진정한 의미의 평화체제가 도래함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경수(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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