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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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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 같지만 부시 대통령이 김 대통령을 향해 던진 다양한 호칭 속에 이번 정상회담의 비밀이 숨어있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 정부 관계자가 평가한 대로 ‘상대방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하는 화끈한 스타일의 지도자’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김 대통령을 부를 때 갈팡질팡한 것은 현안에 관해 견해가 다르거나, 최소한 아직은 김 대통령을 모든 이견을 내놓고 논의할 수 있는 친밀한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미국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협조를 다 얻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평가는 지나쳐 보인다. 좀더 냉정하고 겸허했으면 한다. 김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이번 만남은 첫 번째, 즉 시작일 뿐이다.
몇 가지 사례만 떠올려봐도 김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단번에 모든 견해차를 해소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금방 드러난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캠프데이비드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부부 동반으로 그곳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많은 논의와 대화를 했다. 두 정상은 기자회견에서 같은 치약을 좋아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고 자랑했다.
한 걸음 더 나간 사례도 있다. 부시 대통령은 2월16일 멕시코의 비센테 폭스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산 크리스토발에 있는 폭스 대통령의 목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8시간을 함께 보내며 양국 현안을 논의하고 우의를 다졌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어깨를 두드리고 농담을 건네며 마음껏 웃었다.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스페인어로 “친구여, 당신은 나를 가족처럼 대해 주었습니다”라며 고마워했고, 폭스대통령은 영어로 “당신은 나의 친구이자 멕시코와 멕시코 국민의 친구”라고 화답했다.
정상들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친구라고 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김 대통령에게도 기회는 있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표현했으나 2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임기가 끝나기 전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부시 대통령을 다시 만날 기회도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상견례’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잘 활용해 친구가 됐으면 한다.
최근 기자가 만난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무장관은 한반도 문제 등 주요 결정을 누가 내릴 것이냐는 질문에 “부시 대통령”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한국 대통령이 한반도에 관련된 주요 현안에 대한 궁극적 결정권을 가진 미국 대통령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한국에는 축복이다.
방형남<국제부장>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