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도청

  • 입력 2001년 3월 6일 18시 37분


도청에 얽힌 얘기는 수없이 많다. 중국 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쳐 베스트셀러가 된 한 책에도 흥미진진한 도청 얘기가 나온다.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죽은 뒤 강청 등 ‘4인방’과 반4인방의 권력 암투가 치열했던 며칠간 중국 공산당 부주석 겸 국방부장이었던 예젠잉(葉劍英)이 도청 노이로제에 걸렸다는 것이다. 핵심측근과 4인방 체포문제를 얘기할 때 사무실의 라디오와 녹음기 등을 켜 음량을 높이거나 심지어 수도꼭지를 틀어 물소리를 내 대화 내용이 밖으로 새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1994년에는 캐나다의 전직 정보요원이 미국 등 서방의 적성국 대사관 도청작전 내용을 폭로해 화제가 됐다. 미 첩보요원들은 워싱턴 주재 러시아대사관의 비둘기를 잡아 가슴에 송수신장치를 부착한 후 날려보내 대사관 주요 인사들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것이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한 작전으로 러시아 대사 집무실의 창가에 자주 앉는 비둘기를 골라 시술했다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심각한 도청피해를 봤다. 1970년대 말 박정희대통령 시절, 대통령집무실 유리창에서 미국의 정보기관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도청장치가 발견됐다. 경호실이 발칵 뒤집혀 청와대 안 모든 화분의 흙을 좌헤쳐보고 사무실마다 책상 탁자 의자 밑까지 샅샅이 검색하는 대소동이 일어났다. 90년대 초에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캐나다가 한국대사관의 본국 전화통화를 상당기간 감청했다는 사실이 폭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가안보국(NSA)이 80년대 초 구소련의 워싱턴 주재 대사관 지하에 도청용 비밀터널을 뚫었으며 이를 최근까지 운영해왔다고 엊그제 미국언론이 보도했다. 비둘기에 도청장치를 시술할 정도로 ‘깜짝 기술’을 자랑하는 미국의 첩보기관이니 터널 뚫기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지 모른다. 이제는 도청하는 쪽보다 그것을 어떻게 막느냐가 국가별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남북대화가 진전된다지만 여전히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아있는 우리의 도청방지 수준은 지금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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