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사랑-해요, 발렌타인 데이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42분


다음 주면 거리는 온통 홍조를 띌 것이다. 여자는 고백의 숨가쁨으로 남자는 쑥쓰러움과 기쁨의 열기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여자아이의 모습. 앞머리를 가지런히 내리고 화장기 없는 얼굴, 거기다 하얀 셔츠차림의 그녀는 깨끗하고 해맑은 느낌. 그런데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화면엔 비치지 않지만 아마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 있는 모양이다.

그를 흘깃 바라봤다가 다시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고 또 빤히 쳐다본다. 입술은 금방이라도 무슨 말을 할 듯 달싹거린다.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내쉬기도 한다.

그래 사랑에 빠진 소녀의 마음이 오죽할까. 하지만 수줍어하면서도 두려움 없는 시선. 사랑의 열기와 맑은 순수가 아련하게 교차한다. 초코렛 '투유'를 들고 있는 소녀의 눈빛과 몸짓이 마냥 애틋하다.

'내 앞에선 늘 수줍은 아이' 나직한 나래이션이 들려온다. 얼굴 한번 비치지 않지만 유지태의 촉촉하게 스며드는 목소리는 이 광고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남자는 이미 그녀의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거다. 사랑만큼 들키기 쉬운 게 어디 있을까.

'그애가 발렌타인 데이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머뭇대던 소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시청자는 무슨 말일지 궁금해진다. '사.랑.해.요'. 소녀는 한 음절씩 또박또박 내뱉고 살짝 웃는다. 그 멋적은 웃음. 고백이 부끄럽지만 사랑의 마음은 불가항력이라는 듯이.

발렌타인 데이. 달력마케팅의 상술이라며 일부에선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과연 사랑의 고백이 먼저일까, 초코렛이 먼저일까. 상술이라는 시각은 어쩐지 빛 바랜 얘기 같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짜릿하고 낭만적인 이벤트, 젊은이에겐 한해 최대명절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건 이날 여자들이 묘하게 언밸런스하다는 점이다. 먼저 요즘의 당당하고 대담한 여성들답지 않게 고전적인 표현법을 쓴다. 작은 선물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는 것.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사랑의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 깜짝 고백의 용기는 집단최면에라도 걸리는 걸까.

동화적인 발렌타인 데이의 기원은 3세기경 로마제국에서 출발한다. 그 당시는 황제의 허락 하에서만 결혼이 가능했다. 그러나 곡절이 있었던 젊은 연인은 허락을 받지 못했고 발렌타인 사제는 황제 허락 없이 결혼을 시켜주고 그 죄로 순교했다. 그 후 축일로 정하고 연인의 날이 된 것이다.

우리가 상술에 놀아나지 않고 현명해지면 된다. 유쾌한 이벤트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이다. 공개적으로 분위기 착 깔아주는 발렌타인 데이. 활용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빈 손이면 또 어떤가. 평소에 콕 찍어두었던 남자에게 슬쩍 말을 건네 보자. 젊은 날의 멋이고 드라마다. 소심녀들 화이팅!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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