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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2월 1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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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정도 판단할 자료 모자라▼
우리나라에도 십수년 전부터 광우병과 유사한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CJD)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이 있었다. 드문 질환이어서 의학적 관심은 끌었지만 일반인의 관심은 끌지 못했다. 이 병은 의사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든다. 환자의 경우 뭔가 예전 같지 않은 듯하더니, 인지기능이 갑자기 떨어지며 심한 치매 증상을 보인다. 이후 몸이 불편해지면서 자리에 눕게 되고 의식이 없어지면서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이 불과 수개월 사이에 진행된다.
치료 방법은 없고 발생 원인도 유전으로 인한 가족성 CJD를 제외하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진단은 환자의 증상과 진찰 소견으로 임상적 진단을 내리게 되고 뇌 조직 검사로 확진되는데 진단을 위해 얻은 뇌척수액이나 뇌조직은 감염 위험 때문에 높은 긴장 속에서 다뤄진다. CJD는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이 단백질이 다른 개체로 옮겨지면 같은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이 병은 많은 부분이 이해되지 않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멸균소독으로도 전염력을 없애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린 동물의 일부분, 특히 뇌나 척수 등을 먹으면 같은 병이 옮겨간다. 광우병은 프리온에 감염돼 발생하는 스크래피(Scrapie)라는 병에 감염된 양의 조직을 소의 사료로 사용해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조직을 쥐나 원숭이에게 먹이면 프리온에 감염된다. 그러면 사람이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기 시작한 뒤인 90년대 중반에 그동안의 CJD와는 약간 다른 임상 양상의 CJD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에게 발생하고 나타나는 증상과 뇌조직 소견이 기존의 CJD와는 약간 다른 이 환자들은 광우병에 걸린 소의 조직을 먹어서 발병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위 변형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vCJD)이다. 동물 조직 중에서 먹으면 전염될 위험이 가장 높은 것은 뇌와 척수다. 하지만 요즘은 고기와 혈액에서도 프리온이 검출돼 다른 조직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소만 골라 고기를 제공하면 될 것 같지만 프리온에 감염되고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사람에게 발병하는 CJD의 잠복기는 30년 이상까지도 가능하다. 또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CJD도 광우병도 진단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증상이 없이 도살된 소도 프리온에 감염되고 증상이 나타나기 전 상태의 소였을 가능성이 있는데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CJD에 걸린 사람이 증상이 발현하기 전에 헌혈이라도 했다면 그 혈액으로 만든 약품은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광우병 발병지역에서 일정 기간 거주한 사람의 헌혈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육류제품 원산지 꼭 확인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지 않았고 vCJD로 확진된 환자도 없다. 하지만 CJD로 임상적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뇌조직을 검사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vCJD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최근 일반적인 CJD환자로 보기에는 젊고 증상도 약간 다른 환자들이 발생해 vCJD를 우려했으나 뇌조직 검사가 이뤄지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CJD는 아직 많은 것이 밝혀져야 할 질병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다. 과연 우리가 이 질병에 대해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해야하는지, 이 병이 갑자기 급증해서 많은 사람을 공포에 휩싸이게 할지, 지금처럼 드물게 발생하는 이상한 질환으로 남을지를 판단하기에는 자료가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그래도 너무 무서운 병이기에 소의 뇌나 척수를 귀하게 제공되는 별식으로 여기거나,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일은 삼가야 한다. 또 육류나 유가공 제품처럼 위험성이 있다고 얘기되는 것들은 반드시 원산지 표시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김상윤(서울대 의대 교수 ·신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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