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당 시전집 1~3

입력 2001-01-19 18:49수정 2009-09-21 10:18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72년경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때 아주 작은 시골 분교에서 교사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시가 뭔지도 잘 몰랐던 나는 외판원이 가지고 온 ‘서정주 문학전집’을 샀다.

나는 그 해 내내 이 시인의 시 속에 빠져 살았다. 까만 양복을 입고 팔짱을 끼고 고개를 반듯하게 쳐들고 덕수궁인가 어디엔가에서 찍은 그의 거만한(?)한 사진은 지금도 내 머리 속에 생생하다. 나는 그 전집을 읽고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 답장에 무슨 말이 씌어져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 전집이 나온 후에 쓰여진 ‘질마재 신화’는 나를 화들짝 일어나 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80년대를 거치면서 서정주는, 누구의 표현대로라면 ‘부적절한 아버지’로,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늘 엎칠락 뒤칠락 괴로웠다.

문학과 역사와 인간에 대한 태도는 어느 때 어느 시절이든 한결같아야 하고 변함이 없어야 할 가치들임에도, 나는 그의 시 앞에 서면 늘 형편없이 쫄아들고 사정없이 작아졌다.

그 후 나는 또 1991년 ‘미당 서정주 시전집’을 사서 그의 시 속에서 몇 달을 살았다. 그리고 그의 열 네 번째 시집 ‘늙은 떠돌이 시’를 읽으며 나는 아하, 시인은 나이가 들 때까지도 이렇게 끝가지 시인이어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 시인이 가고 나는 그의 장지에 갔었다. 아주 초졸하고 작은 꽃상여가, 전날밤 눈 내린 선운리 들길을 가고 있었다.

오래오래 살다 죽은 우리 동네 그 어떤 사람의 상여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정다운(?) 꽃상여를 따라 가서 시인이 무덤이 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나는 세 번째로 ‘미당 시전집 1∼3’(1994년·민음사)을 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올 겨울 내내 서정주 시의 숲 속에서 살았다. 이따금 문을 열면 몇 십 년만에 찾아 온 추위로 강물은 하얗게 얼어 터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숲은 끝이 없이 화려하고, 이마가 시려오도록 찬란했으며, 길이 없이 캄캄하게 어두웠으며, 문득 유쾌하고, 그의 관능은 내 몸을 칭칭 감는 배암같이 징그러웠다.

‘열 손가락이 오도도 떤다’는 그의 시 구절을 읽으며 나는 내 열 손가락이 ‘오도도’ 떠는 느낌을 맛보았다. 그의 시는 아주 멀고 아득하게 우리의 눈물을 불러냈으며, 아주 오래된 깊고도 적막한 우물 같이 우리를 빨아들였다.

이제 우리 시는 그 길고도 아득한 서정의 시대를 마감했다.

이제 그 누구도 꽃피는 과수원에 가서 꽃이 피는 것을 보며 “왼종일 북치고 장구치고 마짓굿 올리는 소리를 허고…”하는 숨가쁜 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며, 그 누구도 꽃봉우리를 바라보며 귀신 들린 목소리로 “문 열어라 꽃아”하고 꽃의 문을 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땅의 수많은 시인 중에서 가장 오래까지 우리 가슴에 시를 쓰는 ‘현역’일 것이 분명하다.(시인)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