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미트 페어런츠>예비사위와 장인의 유쾌한 신경전

  • 입력 2001년 1월 9일 15시 00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은 "남 주긴 아깝고 제 손 안에 데리고 있자니 버거운" 그런 존재인가 보다. <미트 페어런츠>는 제목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부모님 만나기(Meet the Parents)'의 고충을 만담처럼 유쾌하게 털어놓는 영화다.

남 주긴 아까운 게 자식인 나머지 아버지는 딸이 사랑하는 '도둑놈 같은 사내'를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이런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예비 사위는 신부의 아버지 앞에서 몸이 뻣뻣이 굳는다. 뭐라 말해야 장인의 환심을 살 수 있을까. 처음엔 잘 해보자고 시작한 일들이 겹겹이 꼬이면서 예비 사위와 장인의 관계는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엉킨 매듭이 되고 만다.

예비 사위는 장인 앞에 내세울 게 별로 없는 사내. 의료계에 종사하긴 하지만 의사가 아니라 남자 간호원이고 돈벌이나 외모도 변변치 않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은 위축되기 마련. 예비 사위 그렉 퍼커(벤 스틸러)는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양이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담배를 피우면서도 안 피우는 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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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 하면 할수록 그렉이 하는 짓들은 모조리 아버지 눈에 가시처럼 박힌다. '피터 폴 앤 메리'가 부른 노래 'Puff the Magic Dragon'의 'Puff'를 '마약'으로 해석했다가 마약중독자로 내몰리고 예비 신부 팸(테리 플로)의 증조 할머니 유골단지를 깨먹는가 하면 아버지가 아끼던 고양이 징스까지 잃어버린다.

화초 전문가인 줄 알았던 팸의 아버지가 CIA 심리분석가임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아버지와 사위, 딸의 삼각구도에 스릴러 타입의 심난한 설정까지 덧붙인다.

<오스틴 파워> 시리즈로 이미 '말장난의 귀재'임을 공고히 한 제이 로치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역시 특유의 말장난을 그치지 않는다. 예비 사위의 이름을 '퍼커(Focker, 발음상 Fucker로 들린다)'로 설정한 것이나 팸의 미들 네임(중간 이름)을 '마더(Mother)'로 설정한 것도 모두 예사롭지 않다.

팸의 아버지는 "오, 그렇다면 우리 손주의 이름은 어쩔 수 없이 '마더 퍼커'가 되는 거잖아"라며 울상을 짓는데, 이런 유머를 듣는 관객들이 넋 나간 웃음을 짓는 건 당연하다.

이야기를 비틀고 비틀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가는 이 영화는 '코미디의 기본'이 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줄곧 질펀한 웃음을 유발한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가 지저분한 화장실 유머로 특별함을 과시했다면 이 영화는 그와 비슷한 유머를 담아내면서도 훨씬 포부가 크다.

화장실 유머와 스탠딩 개그, 만담에 이르기까지 온갖 코미디의 정수를 긁어모은 능력은 확실히 수준급.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절대 체할 만큼 과욕을 부리진 않았다. 웃음과 재미, 산뜻함까지 겸비한 <미트 페어런츠>엔 분명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 특별함을 빛나게 하는 건 변신의 귀재 로버트 드 니로와 어수룩한 남자 벤 스틸러가 선보이는 탁월한 연기 앙상블이다. 두 사람의 '치고 받는' 연기 실력은 그저 그런 코미디가 될 뻔한 이 영화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누군가는 "<미트 페어런츠>의 꼬이고 꼬인 상황이 너무 쉽게 풀려버리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테지만, 코미디는 으레 그런 법이 아닌가.

"이런 오해는 이렇게 해서 풀렸고 저런 오해는 저렇게 해서 풀렸어요"라고 설명하는 건 진지한 드라마 영화에서나 기대해 볼만한 주문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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