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현재/신뢰는 도덕성에 달렸다

  • 입력 2000년 12월 31일 18시 04분


자연의 질서는 정직한 것이어서 어김없이 1년 회귀를 마치고 새해를 밝혔다. 그 동안의 슬기롭지 못함을 말끔히 청산하고 새로운 슬기로움을 찾으려는 것이 사람들의 새해 소망일 것이다. 현재의 정황으로 보아 밝은 해가 되기 위한 첫째 과제는 신뢰사회의 구축이라고 믿어진다. 사회의 안정과 발전은 신뢰관계에서 출발해 신뢰관계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부와 국민, 경영자와 근로자, 생산자와 소비자 등 여러 가지 조합의 당사자간 신뢰관계를 상정해 볼 수 있으나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관계의 붕괴를 우려하는 소리가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다.

▼지도층은 사회에 무한책임▼

가장 큰 바탕의 관계라고 할 정부와 국민의 관계만 봐도 책임있는 정부라는 인상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공무원이 책임있는 공직자상을 국민에게 보여줄 때 비로소 정부와 국민의 신뢰관계는 끈끈하게 맺어질 수 있다. 신뢰관계의 반경이 넓어질수록 협동과 화합의 사회가 구축되고 그 사회의 집단생산성은 높아지고 나아가 국력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뢰사회의 구축은 무엇보다도 각급 지도층의 책임과 도덕성이 있는 자세에 의해서 선도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는다. 지도층은 평생 공인으로서 사회에 무한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어떤 역사학자가 일제강점기에 친일을 한 인사들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식민지 시대 민족에 향도를 잃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 민족지도자의 무한책임론이 다시 상기되기도 한다.

신뢰관계의 구축은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심화된 문화적 이질화 현상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공통적인 문화적 감각의 바탕 위에서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가야만 통일문제에 대한 실질적 접근이 가능할 것이 아닌가 한다.

최근 사회적 효율 특히 경제난국의 극복을 위해 사회적 관리능력의 제고가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적인 인사배치를 중심으로 하는 관리능력 형성보다도 합리성과 실행능력을 위주로 해서 훈련된 관료와 경륜있는 전문가 등 전문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적 관리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다. 국제적으로 적자생존의 냉엄한 논리만 지배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적자(適者)로서 생존케 하는 고도의 관리능력이 요청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치국가로서의 체통 확립이 중시된다. 엄정한 법집행을 하는 국가기관들이 엄존한다면 다른 사회분야의 동요가 있더라도 국가의 기강과 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럴 때 법조기관을 비롯한 국가기관은 진정한 국민 보호의 보루로서의 존엄성과 신뢰성이 유지될 것이다. 또 법을 국민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기 쉬운, 법에 대한 거리감과 거부감도 완화되고 진정 국민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법에 대한 친근감을 자아낼 수 있을 것이다. 법의 나직(羅織)적용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충분한 국민적 합의를 거쳐 제정된 법규가 적절히 적용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안전과 생활에 지장을 줘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장기적 과제인 듯하면서도 사실은 긴급한 과제인 고령화사회에 대한 대책이다. 우리사회가 이미 고령화사회에 들어섰고, 더구나 자녀를 적게 두는 소자(少子)경향에 따라 생산적 연령 이하의 종속인구보다 그 이상 연령층의 종속인구가 상대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여기에 가부장제적 가족관은 급속하게 소멸해가고 있다. 미래의 비극적인 세대간 갈등은 불을 보듯 명백하게 느껴지는 요인들이다. 고령층의 생산적 인구화, 각종 노인질환의 치료, 무의탁자에 대한 개호 등 고령화대책은 이제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선 문제가 됐으며, 제1의 사회적 관심사로 치부돼야겠고,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서의 인식전환이 절실히 요청된다.

▼고령화사회 대책 빨리 세워야▼

새해가 진정 밝은 해가 되려면 정부에는 효율과 도덕성을 축으로 하는 타당도 높은 정책 제시와 신뢰성 있는 집행 그리고 감동적인 국민 설득력을, 기업에는 강력한 체질개선 없이는 절대 존립할 수 없다는, 즉 질풍 속의 경초(勁草)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분명한 현실감각과 즉각적인 실천을, 그리고 국민 일반에게는 IMF사태 초기에 금붙이를 내놓는 등의 일과성 협동심을 넘어선 진정 마음 속 깊이 내면화된 투철한 시민정신을 기대한다.

이 현 재 (전 국무총리·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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