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전문가의 예언

  • 입력 2000년 12월 28일 18시 43분


영국작가 스티븐슨 사우워드는 1931년에 출간한 ‘용감한 사람’이라는 책에서 세계 제2차대전을 날짜까지 짚어 예언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바로 그날인 1939년 9월3일 일요일에 2차대전은 발발했다. 작가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면밀하게 분석해 낸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8년 동안 발생할 변수들을 완벽하게 예상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한계 이상이라는 점에서 그는 허풍쟁이로 치부됐다.

▷반면 경제전망은 과학적이고 통계적 수치를 토대로 작성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적중률이 높고 특히 1년 이내 단기전망의 경우는 오차범위가 상당히 좁은 게 상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워싱턴포스트는 25일자에서 “올해처럼 증시분석가들이 망신을 당한 해도 드물다”며 특히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미국경제연구소의 실수를 나무랐다. 그들은 올초 뉴욕증시가 다우지수 36,000 고지를 향해 힘차게 상승하는 한해를 맞을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실제로는 연말에 10,500 수준에서 바닥을 기었을 뿐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전문가 50인의 연초전망 평균치는 거래소지수가 최저 900, 최고 1,600의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했지만 폐장지수는 504에 불과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주가가 4·4분기에 최고치에 달하며 그때 금융주가 주도할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그들의 예측은 어느 한구석 비슷한데조차 없다. 99년 초에는 “한때 700까지 오를 수도 있겠지만 500선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그해 주가는 1,000 고지를 돌파하는 호황을 연출했다. 코미디같은 일이 2년 연속 벌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이 내년도 우리경제를 다시 암울하게 예고하고 있다. 성장률이 올해의 절반 가까이로 떨어지고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니 가슴이 철렁한다. 나쁜 점괘일수록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통에 연말연시 나라 전체가 온통 경제걱정뿐이다. 전망치가 이번에 한번만 더 빗나가 주기를 바라지만 그것에만 매달리기가 한가롭게 느껴진다면 결론은 하나다. 우리가 달려들어 그들을 틀리게 만드는 것뿐이다. 내년 이맘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예측의 적중도를 평가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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