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아역스타, 드라마 인기 이끄는 숨은 주역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9시 56분


마가렛 오브라이언
마가렛 오브라이언
<옥이이모> <국희>를 거쳐 <덕이>에 이르기까지 많은 드라마들이 아역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방송 초반 시청률 경쟁에서 기선을 잡자, 요즘 방송가에서는 '아역이 떠야 드라마가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아역 연기자의 활약이 드라마 성공의 '필요조건'은 아니겠지만, 대개 인기를 얻은 드라마들을 살펴보면 의외로 간판급 스타들 외에 시청자, 특히 주부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아역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가 인기를 얻은데는 박영규 못지않게 그의 딸인 미달이의 활약이 컸다.

드라마의 감초 구실을 하면서 성인 뺨치는 연기력으로 시청자를 울고 웃기는 천재 아역들. 거슬러 보면 예전에도 꽤 있었다. 지금은 사극과 시트콤에서 활약하는 안연홍은 원래 KBS <토지>에서 최수지의 아역으로 등장해 당찬 연기로 주목을 받았었다. 탤런트 안정훈은 초등학교 시절인 70년대 말부터 영화배우 강수연의 단짝으로 등장했던 아역 스타 출신. 탤런트 손창민 역시 70년대 어린이 드라마의 전설로 꼽히는 를 비롯해 MBC의 숱한 어린이 드라마를 누빈 아역 연기자로 먼저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방송가의 많은 PD들은 지금도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적인 '꼬마 스타'로는 단연 천동석을 첫 손에 꼽는다. 지금 20대 시청자에게는 꽤 낯선 이름이지만,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그는 드라마 아역의 대명사였다. 연속극 멜로물에 주로 등장했던 천동석은 정확한 대사 암기와 깜찍한 감정 표현으로 안방극장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뒤에 등장한 <달동네>의 '똑순이' 김민희가 영악스럽고 당찬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반면, 천동석은 귀공자풍의 깔끔한 얼굴에 언제든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연기력으로 인기를 얻었다. 연출자가 주문만 하면 금방 눈에 눈물이 글썽이며 "엄마"를 찾는 그의 연기는 "너무 아이같지 않아 무섭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탁월했다.

할리우드의 옛 영화들을 살펴봐도 30년대에서 40년대까지 아역들의 활약에 따라 영화사들이 웃고 울었다. 금발머리와 깜찍한 미소로 '꼬마 스타'의 대명사로 불리는 셜리 템플은 그녀를 두고 메이저 영화사 간에 스카웃 전쟁이 벌어져 법정 소송까지 가기도 했다. 셜리 템플을 캐스팅하는데 실패한 영화사 MGM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대역으로 고용했던 한 여자 스타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함께 아역 스타의 전설이 됐다. 바로 주디 갈란드이다. 그런가 하면 스펜서 트레이시와 함께 출연해 <소년의 거리>를 비롯해 하이틴 뮤지컬의 단골 스타였던 미키 루니도 2차대전 이전까지 은막을 주름잡은 아역 스타였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아역중 연기자로서의 천재성만 꼽는다면 지금까지 마가렛 오브라이언을 능가할 아역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영화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로 아카데미 아역상까지 수상했던 마가렛 오브라이언은 10살 안팎의 아이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탁월한 감정 연기로 할리우드 감독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가 "이제부터 울어라"라는 감독의 주문에 "눈물이 흐르도록 할까요, 아니면 눈에 살짝 고이게 할까요"라고 반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아역 스타에서 성인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것도 사실이다. 한국 드라마의 대표적인 아역 스타인 천동석과 김민희의 경우 나이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안방극장에서 사라졌다. 드라마는 아니지만 영화에서 아역 스타로 활약했던 김정훈과 이승현도 성인 연기자로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아역에서 성인 스타로 성공한 예로는 안성기, 강수연, 이재은 정도.

이는 할리우드도 마찬가지여서 셜리 템플과 마가렛 오브라이언의 전성기는 그들의 사춘기시절에서 끝이 났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영화 <34번가의 기적>에서 기막히 연기를 보여준 나탈리 우드나 <내셔널 벨벳>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성인 연기자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아역들의 이야기와 관련돼 하나 더. 개성파 조역으로 유명한 <리셀 웨픈> <좋은 친구들>의 조 페시가 아역 연기자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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