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예수의 웃음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24분


예수가 웃었던 적이 있을까? 사람들이 떠올리는 예수의 상(像)은 거의가 근엄하고 침울하고 비통해하는 표정일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작가 디디에 드코앵은 그의 저서 ‘예수의 웃음’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가 ‘사람의 아들’로서 33년 동안 살면서 수많은 즐거움을 누렸으며 그때마다 유쾌하게 웃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고, 툭하면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 고기를 잡아 구워먹기를 즐겼으며, 유대력의 잔칫날이면 포도주를 마시며 흥겨운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고 말한다.

▷그는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샅샅이 뒤져가며 예수의 웃음을 찾아냈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 복원해낸 예수의 웃음이지만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왜곡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간다. 손님이 많아 신랑이 준비한 포도주가 곧 떨어진다. 하객은 하나 둘 일어서고 잔치는 썰렁하게 파할 것이다. 그때 마리아가 아들인 예수에게 ‘무언가’를 채근하고 예수는 빈 항아리에 물을 부으라고 한다.

▷마리아는 예수에게 ‘기적’을 보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너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고, 사람들에게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을 뿐이다. 마침내 빈 항아리를 가득 채운 물이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했을 때 마리아는 맑은 웃음을 터뜨리고 하객들도 따라 웃는다. 그리고 예수도 웃는다. ‘유쾌한 사람’ 예수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길을 걸으며 그곳에서 인간의 슬픔을 보았다’.

▷성탄절 아침이다. 비록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데 인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탄생을 알렸던 베들레헴의 구유광장에는 얼마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벌어진 유혈충돌로 핏자국이 선연하다는 외신보도다. 우리 사회에도 지역간 계층간 갈등과 반목, 약자의 설움과 분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오늘 하루라도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예수, ‘사람의 아들’이 보였던 사랑과 용서로 충만한 세상이면 좋겠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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