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사랑의 비디오

  • 입력 2000년 12월 1일 19시 14분


미혼 남녀들이 더없이 은밀해야 할 사랑의 행위를 왜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일까. 결혼식 장면을 찍어놓듯 사랑의 동영상을 만들어 돌려보고 보관하는 심리의 저변에는 무엇이 있는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랑 확인법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비디오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둘의 관계가 평생 지속되리라는 믿음이 강해 후일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번 B양 비디오 사건을 교훈삼아 유명인이 된 사람은 무명 시절에 찍은 비디오부터 없앨 일이다.

▷사랑 확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비디오가 일단 인터넷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포르노 스타가 돼버린다. 사랑의 동영상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또는 헤어지기 싫은 사람을 묶어놓는 방법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이것은 순수한 사랑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범죄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자기의 성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노출증 또는 성도착 증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B양의 비디오는 정보화의 급류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을 멀리하던 사람들도 열심히 사이트 주소를 베끼고 다운로드 하는 방법을 배운다. 인터넷으로 남의 정사 장면을 훔쳐보며 낄낄거리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정도 이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로 하기 어려우니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음란물 중독증이라는 정신질환도 있다. 음란물을 보지 않으면 허전하고 일손이 잡히지 않을 정도라면 중독증이다.

▷가장 은밀한 사생활을 인터넷에 띄워 대중에 공람시킨 행위는 한 여성의 인격과 장래를 파멸시키려는 중대 범죄이다. 네티즌의 양식에 호소할 때는 지났다. 유출 혐의자와 인터넷에 올린 사람을 찾아내 죄값을 물려야 한다. 누구라도 이런 신종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O양과 B양은 유명인이라서 전파력이 높았을 뿐이다. 범죄의 피해자들을 경멸해서는 안된다. 비디오를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 우리 모두는 악질 범죄의 공범이다. 그들이 상처를 싸매고 나와 다시 연기하고 노래하게 하라.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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