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경륭/거국적 국정운영이 살길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9시 08분


김대중 정권은 전대미문의 외환금융위기 상황에서 집권한 ‘위기의 정권’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정권이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경제구조조정 작업을 게을리하여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고 야당과의 대결을 조장해 정치위기도 자초했다.

그런가 하면 정부의 대응 미숙으로 의약분업 파동과 노동파업을 더욱 증폭시켜 사회영역에까지 위기를 확산시켰다. 그 결과 나라 전체가 온갖 종류의 ‘복합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내외적 요인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현 정권의 통치능력 부족에 있다고 판단된다. 대체로 다음 3가지 문제가 통치력의 결손을 가져오고 있다.

첫째, 현 정권은 매우 유식한 정권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대명제를 내걸고 출범한 현 정권은 작은 일을 할 때에도 분명한 논리와 원칙을 세우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인사와 각종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갖가지 오류가 반복적으로 나타나 실제로 이 정권이 유식한 정권인지, 아니면 자신의 논리에 집착한 채 새로운 학습과 변화를 거부하는 무식한 정권인지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한다.

둘째, 현 정권은 매우 좁은 권력기반에 안주하는 협소한 정권이다. 사람을 쓸 때 현 정권은 역량과 대표성을 고려해 인재를 폭넓게 활용하지 않고 평소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골라 쓰는 폐단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렇게 선발된 사람들이 당대 최고의 인재들로 평가받는다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사정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셋째, 소수파 정권으로 출범한 현 정권은 모든 권력을 독점하려고 과욕을 부리는 정권이다. 물론 권력의 본질은 나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점하는 데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수파 정권이 이런 욕심을 부리면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된다. 국회법 개정의 편법 추진, 최근의 검찰수뇌 탄핵안 저지 등 갖가지 정치적 무리수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학습을 거부하는 무지, 협량한 인사정책,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욕심이 결합되면 필연적으로 최악의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인사오류에서 빚어진 경제구조조정의 지연, 대립적 여야관계의 지속 등은 그런 부정적 결과의 일부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켜 제2의 환란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가장 시급한 것은 대통령부터 시작해 모든 집권세력이 ‘유식함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집권세력이 겸손함과 개방성으로 재무장하여 국민과 야당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듣고 자기개혁을 철저히 해나가지 않는다면 복합적 국가위기의 극복은 어려워진다.

이와 함께 인사정책의 틀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정권탄생에 기여한 충성심 강한 사람들을 중용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집착 때문에 위기가 악화되고 정권이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지 않았던가? 이제 더 늦기 전에 과거의 잘못된 인사방식을 근본적으로 탈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 정권은 다수를 만들기 위한 인위적 시도를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앞으로는 권력의 공유와 분점을 통해 야당과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협의주의적 접근을 해나가야 한다. 우선 야당 총재와 2개월마다 갖기로 한 영수회담을 잘 살려나가고 경제문제와 남북문제에 관한 한 여야가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해 공동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받아온 야당이 이번에는 공적자금 동의, 한전 민영화 등 산적한 난제를 풀기 위해 대승적 결단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대해 현 정권은 국민을 믿고 협의주의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국적’ 국정운영이 가능해지고 현재의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 정권의 대오각성과 새로운 학습, 그리고 대변신을 촉구한다.

성경륭(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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