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Digital]오세오닷컴 '법의 눈으로 본 고전'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8시 44분


《법을 바라보는 문학의 눈은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19세기 독일 시인 셰퍼는 “법이여, 너를 보면 내 심장은 악마에 눌린 듯하고 나의 머리는 못에 박힌 듯 하다”고 읊었다. 법은 상황을 견고하게 지키려 하고 문학은 변화무쌍한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어느 법철학자는 말했다.

그렇다면 법이 본 문학은 어떤가. 다수 고전문학의 내용을 현행 법의 잣대로 보면 ‘범죄와 불법으로 얼룩졌다’고 보는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끈다. 인터넷 법률정보회사인 ‘오세오닷컴’은 ‘법의 관점에서’ 동서양의 고전 50편에 대한 해부를 시도했다. 오세오닷컴은 이 글을 곧 홈페이지(www.oseo.com)에 게재할 예정.》

▽심청전〓심청이는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아버지인 심봉사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몽운사 화주승의 말을 믿고 바다의 신에게 바칠 처녀를 구하는 장사꾼들에게서 공양미를 받아 시주를 한 뒤 인당수에 빠졌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

우선 장사꾼들이 바다에서 무역업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15세 처녀를 구한 것을 ‘영리목적’으로 본다면 형법 288조 영리목적 유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

또 심청이의 자살은 죄가 되지 않지만 그의 자살을 도운 것은 자살교사죄가 된다. 다만 심청이가 살아돌아왔으므로 최종적으로는 자살교사 미수죄가 성립. 몽운사 화주승이 눈을 뜨게 해줄 의사나 능력도 없이 부처님을 들먹이며 공양미를 받아내려 했다면 사기죄로 기소될 수 있다.

▽선녀와 나무꾼〓나무꾼이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의 옷을 감춰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고 혼인을 해 애를 둘 낳았으나 나무꾼이 이를 발설해 선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

나무꾼이 옷을 몰래 숨기고 이로써 선녀를 일정한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으므로 재물은닉죄와 감금죄가 동시에 성립한다. 선녀와 나무꾼의 혼인이 유효한 것인지도 논란. 혼인의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무효는 아니지만 옷을 감춘 행위를 나중에 알고 ‘사기에 의한 결혼’을 내세워 취소할 수는 있다. 물론 법률상 이혼사유도 된다.

선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것에 대해서는 나무꾼이 ‘친권은 부모가 공동으로 행사한다’는 민법규정을 근거로 가정법원에 친권자 지정 신청을 한 뒤 아이들을 보내달라는 청구를 할 수 있다.

▽홍길동전〓홍길동이 활빈당(活貧黨)을 조직한 것은 그 목적이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더라도 수단이 남의 재물을 빼앗는 것이므로 범죄단체조직에 해당하며 홍길동은 그 두목으로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받는다. 율도국을 건설한 행위가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구성죄가 되는지도 논란거리.

그러나 율도국은 조선 변방에 이미 존재하던 국가였으며 홍길동은 서자(庶子)의 한을 푼 다음 조정에서 판서의 직책을 받고 자신의 무리들을 데리고 율도국으로 간 것이어서 ‘정부를 전복하거나 변란을 일으킬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홍길동은 민법상의 ‘인지청구’나 ‘부자관계 확인청구의 소(訴)’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다는 것.

▽벌거숭이 임금님〓사치와 허영을 좋아하는 임금님에게 재봉사가 ‘내가 만든 옷은 착한 사람만이 볼 수 있다’고 속여 벌거벗은 상태로 거리를 행진하게 하고 상금을 받았다는 내용.

재봉사는 당연히 사기죄의 현행범. 임금님은 경범죄처벌법상의 ‘과다노출’로 즉결심판에 넘겨질 수 있다.

이밖에도 ‘성냥팔이 소녀’와 ‘봉이 김선달’ ‘양치기 소년과 늑대’ ‘백설공주’ ‘춘향전’ 등 수많은 고전과 우화들이 ‘범법(犯法)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법과 고전 사이의 관계는 어느 법철학자의 말대로 ‘인간의 마음 속에 법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좁은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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