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승규/온―오프서점 전략적 제휴를

  • 입력 2000년 11월 29일 19시 05분


도서정가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직업상 누구 못지 않게 책을 많이 사며, 유통업이 포함되는 공급사슬관리(SCM)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로서 이 문제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슈가 반복 제기될 뿐 논의의 진전이 별로 없어 몇 가지 논점을 밝히고자 한다.

▼인터넷서점은 유통혁명▼

도서정가제 유지 명분으로 베스트셀러에서 이익을 내 상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 책 출판을 보조한다, 가격할인경쟁이 심화되면 정가를 높여 할인율을 적용하게 돼 결국 소비자에게 불이익이고 유통질서만 흐려진다, 경쟁격화로 많은 서점이 폐업한 뒤 유통 독과점이 되면 남은 서점들이 가격을 올려 오히려 폭리를 취할 수 있다, 기존서점은 공공도서관이 부족한 현실에서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생존을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세서점의 생존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주장을 검토하기 전에 모든 사람이 반대하지 않을 공통의 논리에서 논의를 시작해 보자.

도서출판과 유통은 문화산업이며 생산과 소비가 모두 문화활동이다.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내용으로 많이 나올수록 좋다. 특히 서적유통업과 유통이익의 존재근거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 정보제공, 수요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위험부담, 물류과정의 역할 담당 등이다. 최근의 도서정가제 논란은 서적유통의 새로운 방식인 인터넷 서점과 기존 서점의 이해 충돌에서 시작됐다. 이 문제는 정보제공과 위험감소라는 면은 인터넷 서점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며 물류 측면에서는 경영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도서정가제란 책의 생산과 소비 자체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양자를 잇는 유통의 문제다. 따라서 도서가격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1만원의 정가가 붙은 베스트셀러는 인터넷 서점에서 7000∼8000원이면 살 수 있다. 이 경우 소비는 도서정가제가 있을 때보다 현저히 늘어난다. 출판사는 인터넷 서점이라고 해서 할인공급하지 않으므로 현금으로 6000원을 받는다. 매출증가에 따라 출판사는 상업성이 부족한 책의 출판에 필요한 자금을 더 확보할 수 있다. 즉 생산과 소비가 모두 늘어나고 오직 유통이익만 감소할 뿐이다. 유통이익이 늘어나야 문화산업이 발전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둘째, 명목가격과 할인율이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이 시장의 작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시장경제체제의 소비자가 실질가격에 반응해 구매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다면 자본주의를 포기하자고 투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셋째, 서적유통업과 같은 사업이 독과점이 돼 폭리를 취한다면 소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소문이 먼저 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통신시장이나 닷컴 열풍에서 본 것처럼 무서운 진입열풍이 불 것이다. 그 상황에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

넷째, 작은 서점들이 경제개발 초기에 도서문화 발전과 보급에 공이 컸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생존을 위해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취급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가벼운 교양, 오락물 이외의 전문서적을 사기 위해 동네서점을 찾는 사람은 없다. 과거 지방대 교수들은 인터넷 서점이 나타나기 전까지 순전히 책을 사기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타야 했다. 대형서점이 지방에 진출하려 했을 때 소비자들은 환영했지만 지역서점들의 반발로 가장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했다.

▼영세서점 생존권 보장돼야▼

다섯째, 영세상인의 생존권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도서출판과 독서문화의 발전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 변화하는 경제원리와 시장의 힘에 적응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의 사업방식을 고집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그 생존을 법적 보장을 통해 확보하는 것은 경제정의에도 맞지 않다.

감히 대안을 제시한다면 서적상들의 공동투자로 가장 경쟁력 있는 온―오프 결합 서점을 키우는 것이다.

시장은 언제나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의 서적 유통업은 시장경제논리가 오히려 경쟁을 통한 문화발전을 지원하는 쪽으로 작동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이승규(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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