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엄마의 와우! 유럽체험] 취리히 옆 동화마을 라퍼스빌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0시 09분


"내일은 어디로 가는 거지?"

주중에 꼬박 취리히 대학병원 수술실에 매여 있는 나우 아빠. 그래서 금요일 오후면, 주말 여행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 투어 컨덕터도 아니면서, 일정 짜고, 티켓 구하고, 도시락 준비에 맛집 섭외, 주판알까지 열심히 굴리는 나우엄마. 지난주의 인터라켄 여행 지출 타격으로 이번 주는 취리히 주변에서 얌전히 근신하기로 합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동화의 마을 라퍼스빌(Rapperswil).

해먹 아시죠? 여름철에 나무에 매달아 놓고 낮잠 자는 둥그런 모양의 그물 말이에요. 라퍼스빌은 이 해먹 모양으로 생긴 취리히 호반 끝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리로 가는 유람선은 뷰어클리프라츠라는 지점에서 출발하지요. 이곳은 취리히의 각종 크루즈가 시작되는 곳으로, 취리히 호반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가족공원이기도 합니다.

배 전면에 금색 문장이 새겨진 벨에포크 유람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군요. 첫 배라 승객도 적어 참으로 한가로운 항해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작 취리히에 살면서, 취리히 호반 여행은 처음이에요. 선착장을 떠난 유람선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를 뒤돌아봅니다. 호반을 따라 아담한 저택들이 산꼭대기까지 촘촘히 늘어선 모습. 이 지역은 취리히의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전망 좋은 지역이지요. 높이며 넓이며 건물 색채가 이웃을 위압하지도, 혼자 나서지도 않는 이 균형과 절제가 호반의 풍경을 한결 아름답게 하는군요.

남편이 두터운 점퍼를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나우가 감기에 홈빡 걸리고 말았을 겁니다. 8월인데도 호수의 아침 바람이 제법 쌀쌀하군요. 집에서 준비해 온 보온병에서 커피도 따라 마시고, 나우에게는 따뜻한 우유와 소시지 하나를 쥐어 줍니다. 옆자리의 할아버지도 나우에게 작은 쵸컬릿 하나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쌍커플 없이 곱상한 동양아이 눈이 너무나 예쁘다면서.

이 유람선은 관광의 목적뿐 아니라, 취리히 시민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정거장마다 배가 멈춰서면, 유모차며 쇼핑백을 들고 오르내리는 모습이 분주합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온 젊은 부부들의 모습도 눈에 뜨이구요. 호반에서 배를 기다리던 노부부가 손자, 손녀를 품에 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한국의 가족들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저기, 호반의 집 정원에서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하네요. 정원에서 호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서, 집집마다 취리히 호수를 수영장으로 이용할 수 있겠군요. 신문 보다 더우면 바로 물로 풍덩. 수영하고 올라와 집에서 물 마시고 다시 호수로 풍덩. 참 편리한 시스템이죠?

물이끼와 녹조와 고목이 물에 녹색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서히 여름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자, 호수 물이 비취색으로 빛나기 시작합니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라고는 나무이파리 뿐, 헤엄치는 오리의 발가락까지 그대로 보이는 청결함이 놀랍습니다. 물려받은 자연이야 우리 금수강산도 빠지지 않지만, 그것을 보호하고 아끼는 마음은 우리가 턱없이 부족한 듯 싶어 부끄러워지는군요.

라퍼스빌은 말 그대로 동화의 마을입니다.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성채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고, 그리로 오르는 돌길을 따라 호반을 내려다보는 산책로를 걸을 때면, 무공해 천국이 따로 없지요. 뜨거운 점심 햇살 아래 백발의 악사가 톱을 이용하여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시원한 맥주로 더위를 식히며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 해결. 산책 두 시간. 나른하게 낮잠까지. 놀이터에서 나우가 또래 친구들과 뛰어 노는 동안, 통통한 사과도 깎아 먹습니다. 한낮의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여기 저기서 첨벙 호수로 뛰어 들면, 충실한 견공들도 주인님을 따라 개헤엄에 신바람을 내곤 하죠. 이 한나절의 평화에 소요된 비용은 오고 가는 뱃삯뿐이었습니다.

나우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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