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베팅 상한액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32분


지난달 개장한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과열현상이 빚어지자 카지노측은 어제부터 베팅상한액을 100만원에서 5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고 한다. 카지노측이 자발적으로 액수를 내렸다기 보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문화관광부가 ‘압력’을 가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다. 당국이 카지노 개장 한 달도 되지 않아 대책을 세운다며 법석을 떠는 것을 보면 우리 행정의 고질병인 졸속과 준비부족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카지노 폐해를 없애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카지노를 없애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폐광지역의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지노를 운영해야 한다면 사전에 면밀한 대책을 세워놓았어야 했다. 그러나 베팅상한액을 낮추는 대책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100원을 걸든 50만원을 걸든 돈을 건다는 점에서 도박은 언제나 도박일 뿐이다.

▷베팅상한액은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는 제도다. 국내에는 카지노뿐만 아니라 경마나 경륜에도 상한액이 설정되어 있다. 국민이 혹시라도 많은 돈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당국의 배려라고 좋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유치한 발상으로는 도박의 폐해를 줄일 수 없다. 카지노나 경마를 하는 사람들은 엄연히 어른들이다. 도박의 위험성에 대한 대비는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이지, 정부가 언제까지 어린 아이 ‘훈육’하듯 대응해 나갈 것인가. 선진국에서 베팅상한액을 두지 않는 것은 각자 성인으로서 스스로 판단해서 하라는 뜻에서다.

▷한국인의 도박심리는 외국과 비교해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는다. 국내 경마의 매출액 규모는 어느새 세계 10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여기에 보트경주에 돈을 거는 경정을 새로 도입한다고 하고, 지자체마다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유치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생활 수준 향상에 따른 도박의 대중화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정부가 할 일은 도박 중독에 대한 치료 및 상담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등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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