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깊이듣기]인문학의 위기, 클래식의 위기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1시 16분


영화 '리베라메'
영화 '리베라메'
"'리베라 메'가 무슨 뜻이야?"라고 선배가 한마디 불쑥 내뱉는다. "아 그건 말이죠, 구해주소서라는 뜻이에요. 라틴어죠. 원래 장례식의 미사에 나오는 말이에요. 리베라 메 도미네, 데 모르테 에테르나, 구하소서 주여,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다들 눈이 동그래진다. "당신 라틴어도 하나?"

"그 뒤에도 쭉 있어요. 인 디에스 일라 트레멘다. 어마어마한 분노의 날에 이르러." 회심의 미소를 지은 뒤 속으로 중얼거린다. '흐흠, 종교음악 광이라면 외울 수 있죠. 장례식 미사란 레퀴엠 (진혼미사곡)을 알기 쉽게 풀어 한 말입니다. 나는 베르디 포레 베를리오즈에서 러터 웨버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의 레퀴엠을 술술 외울 정도로 듣고 있는 걸요.'

고전음악을 즐기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작은 인문학자가 된다. 어학부터 따지면, 바흐의 칸타타를 듣다가 독일어에 눈이 뜨이게 되었다는 사람도 많다. 기자는 일본에서 열린 한일작가회의를 취재하러 갔다가 오페라광인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를 만나 한참을 이탈리아어로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 두사람 모두 이탈리아어 학원에 다닌 일은 없다. 오페라를 듣다 보니 한두마디씩 주워섬기게 된거다. 엉터리로. (이탈리아사람이 옆에서 들었으면 기가 차지도 않았을 거다. 맘마 미아!)

서양사학에도 눈을 뜨게 된다. 왜 귀족의 후원을 받은 베토벤의 음악에 시민계급이 환호를 보냈나. 말러는 체코출신인데 왜 오스트리아인이라고 하나. 등등의 의문을 풀어가다보면 저절로 서점에 가서 '세계사 신문'이라도 뒤지게 된다. 지리학에도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시벨리우스가 묘사한 겨울과 차이코프스키가 그려낸 겨울을 비교하다 보면 헬싱키와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지척이란 사실에도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철학? 바그너나 리햐르트 시트라우스, 말러를 좋아한다면 니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도는 알게 될 테고.

문학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바이런의 '만프레드'며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어찌 알았을꼬.

그런데 요즘 인문학이 위기란다. 공연계와 클래식 음반시장도 동반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잘 모르겠다. 인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학자들도 고민이 많겠다. 그런데 만약 클래식 팬이 줄어든다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잠재적인 아마추어 인문학도와 인문학의 저변을 이루어갈, 즉 인문학에서 실질적인 자양을 얻고 그 필요성을 생활에서 체감할 인구까지도 줄어드는 일이 될테니까. 침소봉대라고?

어쨌거나 리베라 메, 도미네. (구하소서 주여) 인문학을. …그건 라틴어로 뭔지 모르겠다. 미사 문구에 없고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가사에도 없으니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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