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秋(추)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54분


秋―가을 추 穀―곡식 곡 紫―자줏빛 자

傲―거만할 오 霜―서리 상 雁―기러기 안

春이 艸(草), 屯, 日의 합성자로 따뜻한 햇살(日) 아래에서 풀(艸)이 지표를 뚫고(屯) 막 나오는 모습을 뜻한다면 秋는 여름 내 햇빛(火)을 받은 벼(禾)가 익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봄은 陰陽思想(음양사상)에서 陽, 五行에서 나무(木), 五色 중에서 靑을 뜻하며 방위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東쪽에 해당된다. 太子가 거처하는 宮을 왕궁의 동쪽에 짓고 東宮(동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가을은 成熟(성숙)의 계절이다. 五行에서 쇠(金), 五色에서는 白을 뜻하며 方位로는 서쪽이다. 그래서 임금의 거처는 서쪽이나 북쪽에 두었다. 이처럼 一年 중 우리 조상들이 가장 중시했던 것은 봄과 가을이었다. 봄이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면 가을은 성숙, 結實(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春秋’라는 말이 나왔다. ‘一年’, ‘나이’를 뜻한다.

가을은 五穀(오곡)이 豊盛(풍성)하고 날씨까지 서늘하여 일년 중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인심도 가장 좋은 때며 각종 文化行事(문화행사)가 이 한 철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좀 더 가을이 주는 서정성에 주의하다 보면 금방 떠올리는 것이 있게 된다. 늦가을 菊花(국화)와 기러기 떼, 그리고 萬山을 불붙듯 물들이는 千紫萬紅(천자만홍)의 단풍 등등…. 자연히 가을은 文人墨客(문인묵객)들의 좋은 소재가 되어 노래한 작품도 매우 많다.

菊花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나고

落木寒天(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傲霜孤節(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李鼎輔·1693∼1766)

즉 菊花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四君子의 하나로 군자의 高尙한 품격을 象徵(상징)하고 있다. 무엇보다 찬 서리에도 굴하지 않는 氣慨(기개)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한편 기러기에 관한 언급도 많다. 조선 純宗(순종) 때 憑虛閣(빙허각) 李氏가 지은 閨閤叢書(규합총서)에 보면 ‘추우면 북으로부터 남형양에 그치고 더우면 남으로부터 北雁門(북안문)에 돌아가니 信이요, 날면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하니 禮요, 짝을 잃으면 다시 얻지 않으니 節이요…’라고 하여 인간의 五常에 비유하기도 했다. 菊花 같은 절개와 철 따라 어김없이 내왕하는 신의, 그리고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고고하게 나는 모습에서 拘束(구속) 없는 君子의 삶을 寄託(기탁)하였다. 그 가을, 菊花와 기러기의 계절이 왔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478sw@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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