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교통세 ‘말로만 폐지’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33분


지난달 유럽 각국에서는 고유가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시위대들은 국제유가 급등을 고스란히 국내가격에 반영하지 말고 유류세를 낮춰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에서 유류세와 비슷한 것이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교통세다. 현재 ℓ당 휘발유가 630원, 경유가 155원으로 휘발유의 경우 소비자가격의 47.4%나 된다. 정부는 이렇게 거둬들인 돈을 교통시설특별회계에 편입해 도로 공항 등 사회기반시설 투자에 쓴다.

‘목적세’인 교통세는 정부로서는 ‘꿩 먹고 알 먹기’다. 대규모 세금을 안정적으로 징수하면서 에너지절약 유도라는 명분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어떨까. 경제력 차이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 기름값이 다른 선진국, 특히 일본보다 월등히 비싼 결정적 이유가 교통세 등이 높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 증가율 세계 1위의 ‘주범’도 에너지 다소비형을 벗어나지 못한 산업분야이지 가계부문은 아니다. 국내 에너지 소비에서 산업과 수송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른다.

정부 관계자들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목적세는 가급적 빨리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재정경제부는 이번 국정감사 자료에서 “지방교부제 개선과 특별회계 정비 등에 맞춰 교통세와 농어촌특별세의 단계적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된다. 교통세 등의 ‘단계적 폐지 추진’은 정부가 거의 매년 밝힌 단골 메뉴다. 이제는 도대체 언제쯤 없애겠다든지, 아니면 최소한 세율을 얼마나 낮추겠다든지 하는 구체적 대책이 나올 때가 됐는데도 매년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한다.

정부 당국자는 “부처간 의견이 다를 수도 있어 어떻게 할지 밝히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이 높은 교통세 부담을 계속 참고 견디기가 어렵지 않을까. 정부는 ‘막연히 듣기 좋은 노래’만 할 것이 아니라 분명한 정책 청사진을 내놓을 때가 됐다. 어물쩍 넘어가려다간 언젠가 큰코다칠 수도 있다.

권순활기자<금융부>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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