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성윤/남북대화 '숨고르기' 필요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36분


올 6월 남북정상의 만남은 분명히 민족 분단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이라 하겠다. 이러한 평가에 걸맞게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대화와 협력의 시대에 접어들어 동시다발적으로 회담이 진행돼왔으며 일정 부분 가시적인 성과도 도출됐다.

그러나 다양한 회담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점차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회담의 주체인 정부 당국자도 제3차 장관급회담을 마치면서 여론을 의식한 듯 속도조절을 피력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회담의 상대인 북측이 회담 목표를 설정하고 진행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가속은 반세기만에 얻은 민족문제 해결의 역사적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대북정책이 ‘3자공조’의 틀 속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일련의 정황을 고려할 때 한번쯤 숨고르기가 요구되는 시기라 하겠다.

현 시점에서 속도조절 문제가 제기된 주된 이유는 4월8일 정상회담 개최 합의 발표로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일련의 회담 양태가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회담은 통일시대를 열 수 있는 획기적인 사변임에 틀림없으나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민적인 지지와 신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평가할 만한 가시적인 성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담 과정에서 나타난 ‘합의문의 불일치’ ‘합의사항의 불이행’ ‘일정의 불분명’ 등의 ‘3불(不) 현상’은 회담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갖게 하고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일부 회담에서 나타난 사례라고 치부할 수도 있고, 이에 대해 ‘구두합의’와 ‘차기회담 논의’라는 설명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반복되고 있고 그 속에서 회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회담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회담 원칙의 확립을 위한 속도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대북식량지원의 경우만 하더라도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외면하고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차관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전에 선적해 보내는 정부의 태도는 국민적 지지를 획득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의혹과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며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 더욱이 최근의 경제상황을 감안한다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북한과의 대화에 국력을 집중할 때도 아니며 집중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는 점에서도 남북대화는 속도 조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북한은 전략적 관점에서 속도 조절을 신축적으로 전개하고 있고 그 결과가 회담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북한의 현실에서 절대적인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교시를 관철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키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회담 일꾼들이 교시를 실천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산가족 교환방문사업을 9월과 10월에 하며 제3차 장관급회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는 김위원장의 공언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폭주하는 남북대화를 감당할 능력의 한계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관철돼야 한다는 ‘교시’의 성격상 속도조절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남북대화를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보조역량으로 간주하고 회담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여하튼 속도조절을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정확한 의도도 파악하지 않은 채 과속으로 대응하여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비용이 요구되는 것으로서 현실적인 정책이 될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돼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과속이 아니라 속도조절이며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북과의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특히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비방과 비판을 구분해 대안 있는 비판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남북대화는 장거리 레이스라는 점에서 대화원칙의 준수와 능력에 맞는 대화를 진행했을 때 결실이 보장되는 것이며 속도 조절의 키워드는 자주역량의 확보라고 하겠다.

강성윤(동국대 북한문제연구소장·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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