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기부 자금'의 출처?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54분


96년 4·11총선을 앞두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나온 돈이 여당인 신한국당의 선거자금으로 유입됐다는 보도는 여간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검찰은 400억원 이상의 안기부 자금이 당시 신한국당의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간 단서를 잡고 이 돈의 흐름을 집중 추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신한국당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이었던 황명수(黃明秀·현 민주당 고문)전의원의 비밀계좌 등을 통해 안기부의 선거자금 지원을 확인하고 황 전의원 등 관련자 10여명을 출국금지시켰다는 보도다. 상당수 의원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에선 느닷없이 선거자금 의혹이 불거진 배경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지만 검찰은 일단 철저한 수사 의지를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건의 핵심은 문제의 안기부 자금이 어디에서 나온 돈인가 하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안기부의 자체 예산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권영해(權寧海)씨는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가 국민이 낸 세금을 집권당의 선거자금으로 전용했다면 이는 국기(國基)를 흔든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예산이 아니고 안기부가 기업 등에서 조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안기부의 불법적인 정치개입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자금의 출처는 물론 정확한 자금규모와 행방, 돈세탁 관련자 등도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검찰의 수사에 대해 한나라당은 ‘야당 음해 공작’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정국반전의 ‘계산’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한빛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사건에 대한 야당의 특검제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검찰의 작전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검찰로서는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다. 물론 검찰이 정국상황을 고려해 수사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같은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검찰이 경남종금을 통해 돈세탁한 사실을 확인한 경부고속철도 차량선정 로비자금 의혹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알스톰사의 로비자금이 정치권으로 유입된 단서를 포착한 만큼 누가 얼마나 받았는지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야당에서는 여전히 DJ의 대선자금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이 이 모든 의혹을 파헤쳐야만 형평성 시비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정치권의 ‘검은 거래’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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