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의 바둑세상만사]막다른 골목으로 몰지 말라

  • 입력 2000년 10월 4일 11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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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9단
이창호 9단
아마추어 바둑팬들은 대체로 공격바둑을 좋아한다. 자신이 바둑을 둘 때는 물론이고 프로기사의 바둑도 수비형보다는 공격형 바둑을 관전할 때 더 즐거워한다. 이창호 9단이 바둑을 잘 둔다는 사람은 많아도 그의 바둑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아마추어는 사실 드물다. 유창혁 9단이 일인자가 아니면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것은 그가 화려한 공격을 주무기로 하는 기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전용으로 수비형 바둑보다 공격형 바둑이 더 재미있다는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별다른 전투 없이 한두 집을 다투는 밋밋한 계가 바둑보다 대마사활이 얽히고 설켜 서로 죽느냐 사느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바둑이 확실히 재미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 인간들 깊숙한 곳에 남을 공격하거나 그런 싸움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는 본성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추어와 달리 대부분 프로기사들은 수비형 바둑을 선호한다. 아마추어는 재미로 바둑을 두지만 프로기사에게는 승률이 중요하다. 프로에게 승률은 곧 수입이다. 그들은 이기는 바둑을 두어야 하기에 수비형 바둑을 선호하지 않나 추측해 본다. 반대로 얘기해서 공격바둑으로는 승리를 보장받기가 그만큼 수월치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격은 공격받는 자보다 공격하는 자가 더 어렵다'는 말처럼 바둑에서 공격은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 바둑에서 무지막지한 공격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타개의 귀신이라 서투른 공격은 오히려 패배의 지름길이 되기 쉽다. 그래서 프로의 공격은 은밀하고 간접적이며, 이중적이고, 때론 애매모호하기까지 하다. 직격탄을 퍼붓기보다는 여기저기 함정을 파고 덫과 지뢰를 깔아놓는 식이다.

기력이 약한 아마추어 바둑의 공격은 그 반대 양상이다. 도 아니면 모, 죽기 아니면 일확천금을 노린다. '아생연후 살타'도 무시한 채 무조건 공격 앞으로! 거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대체로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공격'과 '상대 돌을 잡으러 가는 것'의 차이이다.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공격은 돌을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잡겠다고 겁을 주는 것이 공격이다. 상대에게 비굴하게 두 집 내고 빨리 살라고 강요하는 것이 공격이다. 자신은 그 틈을 타 여기저기서 이득을 보겠다는 음흉한 심보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공격은 돌을 잡는 것이 아니라 돌을 살려주는 것이다.

돌을 잡으러 간다는 것은 상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행위이다. 탈출구가 없다면 상대는 전력을 다해서 저항한다. 잘못하다간 공격하던 내 돌이 되레 역습을 받을 수도 있다. 이 편도 그만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유창혁 9단이 사실 상대 대마를 잡고 이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간혹 잡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느낀 상대가 던질 곳을 찾기 위해 부러 죽이는 경우가 많다.

프로들은 바둑이 앞서 있다고 판단하면 잡을 수 있는 말도 억지로 잡으러 가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혹시 역습 받거나, 실수를 두려워해서이다. 이 편이 바둑의 승리를 더 쉽게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인생에서는 어떨까? 혹 내가 많이 앞서 있는데도 한참 뒤쳐진 상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지는 않은지….

김대현 momi21@nitel.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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