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이병훈/약물식물 개발 잠재력 풍부하다

  • 입력 2000년 9월 29일 18시 41분


1994년 미국 의회는 고비용의 질병 치료보다 질병 예방에 초점을 맞춘 ‘건강보조식품 건강교육법(Dietary Supplements Health & Education Act)’을 제정했다. 그런데 이 법은 천연약물의 과학화를 통해 국민건강 향상을 실현하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즉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천연약물 소재의 유용성을 적극 교육, 홍보하고 이런 소재를 상품화하여 국민이 전세계적으로 수천 년 동안 사용돼 온 다양한 천연약물을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획기적인 이 건강교육법은 시행 결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미국의 천연약물 관련 산업이 일약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법이 제정되기 전에 50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던 천연약물을 이용한 건강보조식품 시장은 불과 5년 후 200억 달러를 웃도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며 2003년까지 계속 18∼20%의 성장이 무난하리라는 예상이다. 이러한 성장은 유기적인 산학협동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천연약물의 유용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야만 상품화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은 미국의 건강교육법은 기업의 연구 지원을 유도해 냈으며 이에 따라 대학들은 앞다투어 천연약물 관련 학과와 연구소를 개설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천연약물을 활용한 생명과학 분야에 산업계와 학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자생식물의 다양성 확보와 신소재 개발을 위한 ‘21세기 프런티어 사업’이나 ‘천연약물 과학진흥법’, 그리고 최근에 적극 논의되고 있는 ‘건강보조식품 특별법’ 제정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30만 종의 고등식물 가운데 대략 4만여 종은 약용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1만여 종의 약용식물은 세계 각국에서 전통 의약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에 의해 체계적으로 연구된 약초는 불과 500여 종에 불가하다. 이는 뒤늦게 출발하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연구 대상이 되는 약용식물 자원이 풍부하고 성공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발견된 항암제의 45%가 이런 천연약물 연구에서 탄생했다는 점은 이 분야의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의학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다. 유전체학(Genomics)의 탄생과 비약적인 발전이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개발된 신약들은 모두 인간 세포와 신물질의 유용 관계를 기초로 했다면 앞으로는 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인간 유전체와의 상관 관계를 기초로 인류 건강에 유용한 신물질이 개발될 것이다.

이런 시기에 한국이 갖고 있는 오랜 민간의약의 역사와 전통 역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우선 ‘동의보감’을 비롯한 수많은 천연약물에 대한 고증 자료와 활용 경험은 과학화의 단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임상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도 과학의 손길이 닿지 않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약용식물을 새로운 과학적 접근을 통해 신물질로 개발해 내는 것은 21세기 우리의 최대 과제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

이병훈(남양알로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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