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007본부의 피격

입력 2000-09-22 18:34수정 2009-09-22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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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넘나들면서 적국 스파이와 겨루는 순간에도 여유있게 미녀와 반짝사랑을 즐기는 정예 공작원을 그린 것이 007 영화였다. 이 첩보물은 독특한 소재로 흥행에 성공했다. 영국판 홍길동(洪吉童)인 제임스 본드와 고성능 첨단무기들이 관객의 흥미를 자아냈다. 이 영화의 모델인 영국 대외첩보부(MI6) 본부건물이 엊그제 소형 미사일에 의해 피격돼 영국경찰이 수사중이라고 한다.

▷서방 국가들에 정보기관을 전파시킨 영국 정보기관의 역사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실을 둘러싸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온갖 음모와 암투가 횡행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 1세의 국무장관이던 프랜시스 윌싱엄이 처음으로 비밀첩보기구를 조직했다. 1586년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암살모의 사건을 적발한 것이 이 첩보기구의 작품이었다. 이 사건으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붙잡혀 처형됐다. 영국 정보기관의 복무지침이 된 ‘왕국 수호(Regnum Defende)’라는 구호는 여기서 연유됐다.

▷MI6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력과 조직이 뛰어난 나치 독일군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눈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전선에서 독일군의 동향에 까막눈이었다. 정보협조를 요청하는 미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영국 처칠 총리는 “정보기관을 창설하라”고 답했다. 그래서 루스벨트가 자신의 대학 친구인 윌리엄 도노번 대령을 MI6에 수개월간 연수를 보내 조직한 것이 미 전략지원국(OSS)이다. 지금의 CIA는 OSS가 확대 개편된 것이다.

▷MI6와 국내보안국(MI5)으로 나뉘어 있는 영국 정보기관의 책임자들은 언론과 담을 쌓고 활동했다. 영국 총리가 취임하면 맨 먼저 종합 브리핑을 해 주는 사람이 바로 이 두 기관의 책임자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비밀이었다. 93년 존 메이저 총리의 투명화정책으로 MI5의 책임자가 언론에 공개됐으나 MI6의 수장은 끝내 베일에 가려 있다. 국가정보기관의 장은 국익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결코 공개되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이 깔려 있는 것이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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