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무서운 영화>대책 없는 패러디의 진수

  • 입력 2000년 9월 19일 16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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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3일 개봉되는 웨이언즈 형제의 <무서운 영화>(Scary Movie)는 무섭기보다 '막 나가게' 웃긴다. 괜한 무게 같은 건 애초에 잡을 의도조차 없었고, 최대한 웃겨보자는 코미디 정신만이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무서운 영화>가 웃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난 1년간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의 명장면들을 골라 대책 없는 코미디 버전으로 바꿔놓는 것.

<무서운 영화>가 건드리는 영화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공포영화에 관한 공포영화인 <스크림>, 선남선녀의 비키니 호러를 선보인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화장실 유머의 대를 잇는 10대 청춘영화 <아메리칸 파이>, 아름답게 장식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실상을 파헤친 <아메리칸 뷰티>, 기막힌 반전이 멋졌던 스릴러 영화 <식스 센스> 등. 한마디로 할리우드의 1년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메들리 버전'인 셈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은 <스크림>의 드류 베리모어처럼 팝콘을 튀기다 이상한 전화를 받는 미모의 여성 드류 베커. 그런데 그녀는 드류 베리모어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드류의 에로틱한 버전이라고 설명하면 적당할까. <플레이보이>지의 표지를 장식해도 될 만큼 쭉 뻗은 몸매를 과시하는 그녀는, 실리콘을 넣은 것 같은 가슴으로 청순한 드류 베리모어의 이미지를 전복한다.

초장부터 도발적인 냄새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이 영화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장미꽃 더미에 파묻힌 <아메리칸 뷰티>의 미나 수바리를 정액에 파묻힌 나체의 여자로 바꿔놓는다. 게다가 "내 눈엔 귀신이 보여요"라는 멘트를 남발함으로써 <식스 센스>에서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뱉었던 매력적인 대사를 능멸한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부족해진 할리우드가 이제 철저한 '복습'을 통해 스스로 진부해지기로 마음 먹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무서운 영화>는 이미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들을 복습함으로써 오히려 더 신선해졌다. <총알탄 사나이>를 제작한 ZAZ(데이비드 주커, 짐 아브라함스, 제리 주커) 사단이나 패러디 영화 전문배우인 레슬리 닐슨보다 훨씬 노골적인 패러디를 선보인 <무서운 영화>는 2000년 할리우드 영화계에 불어닥친 신선한 혁명이다.

<무서운 영화>를 연출한 인물은 코엔, 워쇼스키, 웨이츠 형제 등 할리우드 형제 감독의 계보를 잇는 웨이언즈 삼형제. 이들은순전히 패러디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음을 알려준 코미디 영화의 귀재다.

<무서운 영화>가 무서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 폼잡지 않고 '날 것'의 웃음을 전해주는 솔직함에 있다. 이 영화의 원제가 될 뻔한 후보 제목은 패러디 영화로 태어난 자신의 숙명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나는 지난 여름 할로윈데이가 13일이자 금요일에 겹쳐 있어 비명을 질렀다>(Last Summer I Screamed Because Halloween Fell On Friday The 13th) 또는 <만일 당신이 내가 지난 할로윈 데이에 한 일을 알고 있다면 비명을 질러라>(Scream If You Know What I Did Last Halloween). 정말 웃기는 제목이며 막 나가는 제목이다.

게다가 <무서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인 버피 겔러, 드류 베커, 게일 헤일스톰 등은 <스크림>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주인공 및 주연 배우의 이름을 베낀 흔적이 농후하다.

<무서운 영화>를 만든 제작사가 <스크림> 시리즈로 흥행에 짭짤한 재미를 봤던 '디멘션 필름'이라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자기복제'를 자처함으로써 그들이 노렸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솔직히 <무서운 영화>는 영화를 심오하게 분석하며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주는 게 없다. 가벼워지기로 작정한 영화가 무슨 거창한 철학과 번뜩이는 재치를 담아냈겠는가. <무서운 영화>의 패러디는 유치한 수준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으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들 만큼 독창적인 재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러나 아이들의 재롱을 보듯 혹은 신인 코미디언의 설익은 개그를 보듯 영화를 지켜본다면, 시원한 웃음 정도는 충분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황희연 기자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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