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업]서울서 동창회여는 평양中출신 일본인

  • 입력 2000년 9월 18일 18시 34분


“그때는 원수처럼 여겼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한 시대를 살았던 동지라는 느낌이 드는구나.”

18일 오후 5시반 ‘평양중학교 총동문회’가 열린 서울 롯데호텔 사파이어볼룸. 백발이 성성한 한일 양국의 70, 80대 노인 200여명은 반세기만에 만난 친구들과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45년 해방 직후 대부분의 학생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개교 31년만에 문을 닫았던 평양중.

이후 학교를 함께 다닌 일본인과 한국인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55년만에 처음.

평양중 총동문회 이마이 마사노리(今井正德·82·나라현 거주)회장은 “평양중 출신들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동문회를 갖게 돼 기쁘다”며 “그러나 평양의 모교 교정에서 행사를 갖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윤흥정(尹興禎)전체신부장관 등 평양중 출신 한국인 12명과 함께 ‘평양을 그리워하는 모임’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평양보통고등학교 총동문회 회장인 이영덕(李榮德)전총리 등 당시 평양에 있던 10여개 학교 출신 40여명도 참석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온통 평양 거리와 당시의 선생님, 그리고 헤어진 후 살아온 여정 등에 모아졌다.

자신을 ‘조센징’이라고 놀렸던 하라다 마모루(原田守·70·나고야 거주)를 만난 안성철씨(70·인천 부평구)는 “학교 다니면서 너를 때려주기 위해 얼마나 별렀는데…”라며 손을 건넸고 하라다는 “그때는 철이 없어서…”라며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일부는 7월 북한을 방문했던 몇몇 동문이 찍어온 평양거리의 사진을 보며 세월의 흔적을 더듬기도 했다.

학교 건물이 없어지고 지금은 주석궁 자리가 됐다는 동문의 이야기를 들은 나카무라 마사오(中村正夫·79)는 “평양의 학교는 사라졌지만 남북한이 통일돼 죽기 전에 꼭 그 자리에라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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