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순원/함께 잡은 저 손 놓지않기를

  • 입력 2000년 9월 16일 18시 37분


요 근래 텔레비전을 통해 두 번이나 가슴 뭉클한 기립박수 장면을 보았다. 먼저 본 것은 지난 달에 열린 남북교향악단 합동 연주회 때 남쪽의 소프라노 조수미와 북쪽의 남성고음 이영욱이 베르디의 가극 라 트라비아타 중 이중창 축배의 노래 를 함께 부르며 극중의 연인처럼 관객 앞에 포옹했을 때이고, 또 한 번은 바로 엊그제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남과 북의 선수단이 손에 손을 맞잡고 동시 입장할 때였다.

올림픽은 단순히 세계 각국의 선수단이 모여 보다 빠르게, 보다 멀리, 보다 높이 뛰는 기량만을 뽐내는 대회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매 대회 때마다의 개막식은 다채로운 볼거리와 화려한 공연으로 전세계 지구인의 눈길을 사로잡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사로잡기 위한 이벤트를 공개적으로, 또 비공개적으로 준비해왔다.

새천년을 맞아 처음 열리는 이번 시드니올림픽 역시 역대 어느 대회보다 화려한 개막식을 준비했다. 식전 행사 역시 이 대회를 치르는 호주인의 자긍심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이어 보게 될 보다 큰 감동의 서막을 알리며 주단을 까는 일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주단 위를 더 큰 감동의 주인공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행진한 것은 바로 우리 코리아 의 남북선수단이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단지 아흔여섯 번째의 순서로 코리아 라고만 말했다. 곧 이어 한반도기를 맞잡은 남북의 남녀 기수의 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손에 손을 맞잡은 남북 선수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 모인 세계 관중들 모두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큰 소리로 코리아 를 연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바로 우리가, 남과 북이 합친 코리아 가 연출해 낸 것이었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 국가이다. 그러나 세계인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고, 그 하나됨을 세계인의 기립박수로 축하받았다. 그 박수 속에 우리는 남과 북이 마주 잡은 손을 높이 치켜들어 민족 화합의 의지를 세계인 앞에 약속하고 또 과시했다. 그곳에 가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고, 또 세계인 앞에 함께 입장한 것이었다.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핑 도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 앞의 텔레비전까지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런 우리 스스로가 너무도 대견스럽고 감동스러워 어느 결에 눈가를 적시고 있는 눈물조차 닦아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의 신금단 부녀의 눈물 상봉, 세계 탁구선수대회에 남북 단일팀 출전, 그리고 이번 새천년 첫 올림픽 개막식에 남과 북이 동시에 입장하기까지 같은 민족인데도 우리는 참으로 긴 세월 동안 서로가 서로를 너무 멀리서만 바라봐 왔다.

아니, 때로는 스포츠를 통해 서로의 기량을 겨루고 우정을 다지는 자리에서까지 형제가 아닌 원수처럼 반목했던 시절도 있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나는 군에서 아침 점호 때마다 멸공구호 를 외치던 세대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멸공구호를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중계 때 응원석에서까지 터져나오는 소리를 들었고, 몇 명 나오지 않는 북쪽 응원단 역시 남쪽에 대고 그 비슷한 구호를 외치던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다. 때로 우리는 운동 경기 응원에서까지 서로 '쳐부수자'와 '까부수자'를 드러내며 반목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스포츠에서까지 적의를 드러내고, 또 오랜 기간 너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우리가 남과 북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손에 손을 맞잡고 세계인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올림픽 마당에 동시 입장을 했다.

부수면 무너지는 것이 벽이고, 뚫으면 열리는 것이 문이며, 닦으면 뚤리는 것이 길이다. 우리는 지금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감동스러운 순간을 통해 또 한번 남과 북의 벽을 부수고, 문을 뚫으며, 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 통일의 길을 닦고 있는 것이다.

부디 우리 화합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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