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기대/한빛銀사건 '세월이 약'이라니

  • 입력 2000년 9월 14일 18시 34분


“세월이 약이다.”

한빛은행 불법 대출사건과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 의혹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한 검찰 고위 간부가 추석 직전에 한 말이다.

이 간부는 한빛은행 사건 수사결과 발표가 있던 8일 언론 보도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이 나라에서 이만큼 시끄럽지 않은 적이 있느냐. 우리에게는 세월이라는 좋은 약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이 검찰 수사결과를 믿지 않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이 사건도 잊혀지고 검찰에 대한 비난도 줄어들게 될 것이란 얘기로 풀이됐다.

실제로 검찰은 정치적인 대형사건을 미봉한 뒤 ‘며칠만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세월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으로 대응한 전례가 적지 않다. 검찰의 계산대로 국민과 언론이 이를 쉽게 망각해 결국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가 미봉으로 끝나 검찰이 더 큰 곤욕을 치러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97년 한보사건 1차수사 때 검찰은 은행대출에 대한 ‘몸통’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서둘러 덮었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수사를 재개해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를 구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옷로비 의혹사건 때는 의혹만 부풀린 채 사건을 미봉했다가 특별검사의 재수사를 지켜봐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추석 연휴에 나타난 민심은 검찰 수사에 대해 긍정적인 쪽보다는 냉소와 불신이 팽배한 쪽이다. 검찰은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씨가 제기하고 있는 외압 의혹 등을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이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라는 본연의 자세를 벗어나 ‘정치적 판단’을 하면 바로 그 판단이 비수가 되어 검찰로 날아들었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옷로비 사건 ‘수사파동’을 계기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던 검찰이 아닌가.

양기대<사회부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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