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忍耐(인내)

  • 입력 2000년 9월 5일 18시 42분


忍―참을 인 耐―견딜 내 削―깎을 삭 髮―터럭 발 琴―거문고 금 烙―지질 락

흔히 극심한 고통을 두고 ‘심장을 도려낼 듯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忍은 바로 그 심장(心)을 칼날(刃)로 도려내도 ‘참는다’는 뜻이다. 耐는 而(이)와 寸(촌)의 결합인데 而는 본디 생긴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턱수염’을 뜻했다. 한편 寸은 손목 한 치 되는 곳에 점을 찍은 것으로 대략 손가락 한마디 쯤 되는 부분이다. 쉽게 말해 診脈(진맥)하는 부위를 뜻했다. 따라서 寸의 본래 뜻은 ‘마디’가 되겠다.

옛날에는 자(尺)가 없었으므로 길이를 재는 데는 손(뼘)이나 손가락 마디를 가지고 쟀으므로 寸은 길이를 재는 기본 단위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準則(준칙) 法度(법도)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일례로 守는 ‘관가에서 법도를 지킨다’가 되어 본뜻은 ‘지키다’가 된다. 곧 관리가 遵法(준법)함을 의미한다.

옛날 남자에게 턱수염은 權威(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옥에 갇히게 되면 削髮(삭발)부터 시켰는데 輕犯罪(경범죄)를 저지른 죄수의 경우 턱수염 정도는 허용했으니 그 정도면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耐는 ‘견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흔히 忍耐(인내)의 대표적인 예로 臥薪嘗膽(와신상담)을 들지만 그다지 교훈적이지는 못하다. 복수를 목적으로 한 忍耐는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수십 년의 忍苦와 기다림 끝에 마침내 靑雲의 꿈을 펼친다는 내용이라야 요즘처럼 무뎌질 대로 무뎌진 우리네 心琴(심금)을 흔들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중국 주나라 초기의 정치가인 姜太公의 忍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름이 尙(상)이었던 그는 깊은 학문을 갖췄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자 매일 渭水(위수)에 나가 낚시를 하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러기를 60년, 그가 앉았던 바위는 한자 깊이나 파였고 머리는 어느덧 백발이 되었다. 물론 無能力者로 烙印(낙인)이 찍혀 마누라는 벌써 도망가고 없었다.

당시 殷末의 폭군 紂王(주왕)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昌에게는 자신을 도울 賢者가 필요했지만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던 중이었다. 마침 사냥길에 渭水에 들렀다가 姜太公을 발견하고는 그 날로 수레에 태워 모셔와 국정의 고문으로 추대한다. 둘이 힘을 합쳐 殷을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여니 周다. 마침내 賢君을 도와 覇業(패업)을 이룬 것이다. 姜太公이 忍耐로 낚았던 것은 越尺이 아니라 천하였던 것이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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