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스포츠 '강국'과 '선진국'

  • 입력 2000년 9월 4일 18시 55분


얼마 전 조금 딱딱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관련 기사를 유심히 챙기는데 이상한 게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나라가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 이상을 따 종합순위에서 5회 연속 10위권 진입을 노린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10위권 진입을 스포츠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스포츠 강국이란 표현을 잘못 보거나 들었을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어쨌든’이란 토를 달며 말을 이었다. 스포츠 강국이면서 스포츠 선진국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이제는 둘 중 후자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스포츠 선진국이라…. 말은 쉬운데 확연하게 어떤 기준으로 스포츠 선진국을 가늠할 것인가. 스포츠에 대한 시민의식, 스포츠 시설, 스포츠 과학, 스포츠 산업, 선수의 자세 등이 포함돼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메달 수 특히 금메달 수에 연연하기보다는 그런 쪽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올림픽 메달순위에서 84년 로스앤젤레스 10위(금6, 은6, 동7), 88년 서울 4위(금12, 은10, 동11), 92년 바르셀로나 7위(금12, 은5, 동12), 96년 애틀랜타 10위(금7, 은15, 동5)를 했다. 특히 88년 올림픽 이후에는 일본 영국 캐나다에 늘 앞섰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그동안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해서 나라의 위상이 서방선진7개국(G7)수준으로 올라간 게 아님은 분명하다.

또한 우리나라가 메달순위에서 영국 캐나다 일본에 앞선다 해서 그들보다 스포츠 선진국이라 말하기는 어렵겠다. 또 최근에는 금메달을 잘 따지 못하지만 복지국가로 꼽히는 노르웨이 핀란드 등을 스포츠 선진국이 아니라 할 수도 없겠다.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금메달 경쟁을 벌였던 소련과 스포츠 과학이란 이름 아래 인간개조를 통한 금메달 작전에 나섰던 동독 등이 메달 순위에서 상위였다 해서 서방 여러 나라를 앞서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불리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스포츠 선진국은 결국 여러 분야에서의 선진 문화를 바탕으로 시민 스포츠 정책이 이뤄지는 나라라는 뜻일 터이다. 사실 최근의 자료는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기술분야 38위, 삶의 질 순위 31위, 의료체계 분야 58위, 건강수명분야 51위 등으로 보고하고 있으니 스포츠 선진화에 조급해 할 필요는 없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시드니올림픽에서도 우리 선수단이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를 살리면 좋겠다. 하지만 스포츠 정책 당국과 스포츠계를 포함한 우리는 ‘스포츠 선진국’이란 화두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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