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영언/실패를 기다리는 사람들

  • 입력 2000년 8월 27일 19시 03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 몇 달 뒤면 무대 뒤로 퇴장한다. 여러 시각이 있지만 그는 전체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섹스스캔들의 흠에도 불구하고 임기 8년 동안 다시 미국의 번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미숙한 점이 있어야 성공한다’(백상창저 ‘정신분석 정치학’)는 가설을 다시 한번 입증해준 사례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아마 그 같은 평가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 모 부처의 1급 공무원이었던 김모씨. 술김에 성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해서 30여년 지켜온 공직을 떠나야 했다. 그동안 그가 공무원으로서의 이룬 업적과 능력은 그 순간 아무런 고려대상도 되지 못했다. 인사권자는 마치 실수를 기다렸다는 듯 사표를 수리했다.

우리사회는 그 사람을 평가할 때 삶의 전체적인 궤적을 보지 않는다. 한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두고두고 멍에가 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집단)의 실수나 실패 실책을 용인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 오히려 경쟁자나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의 실수나 실패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인사철이 되면 출세지향적인 일부 대상자들 사이에는 서로 헐뜯는 얘기들이 무성하다. 경쟁자에 대한 투서가 인사권자에게 들어가기도 한다. 라이벌을 추락시켜 반사적 이익을 보자는 속셈이다.

요즘 김대중정부는 남북관계개선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남북문제에만 매달려 다른 부문은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보수세력을 비롯한 일부 국민 중엔 이 작업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김대통령과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을 때 일부 인사들은 여러 장애요인을 들며 실현이 안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정상회담 날짜가 잡히자 회담은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과 이루어지고 김국방위원장과는 잠깐 ‘상봉’할 것이라고 했다. 두 정상의 회담이 확정됐을 때는 만나지만 공동선언도 못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 문제를 두고도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온다.

이들의 의견도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본다. 어떤 경우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얘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 일부 인사 중엔 어쩌면 남북관계개선이 제대로 안됐으면 하는 ‘실패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북문제란 너무 조급하게 보면 안 되고 시간을 두고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에도 또 국민에게도 모두 장기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사람을 순간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오랜 살핌 끝에 판단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가운데 현 정권에 독설을 퍼부어오던 김영삼 전대통령은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호된 비판을 했다. 그의 심사는 무엇일까. 김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충정에서일까. 그런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그는 아마도 김대통령의 실패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글픈 일이다.

송영언<이슈부장>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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